광해군, 연산군 조사 발표 자료
- 최초 등록일
- 2010.12.05
- 최종 저작일
-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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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광해군, 연산군에 관한 발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1: 연산군의 업적과 과오, 그리고 변론
1.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연산군에 대한 기록
2.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연산군의 업적
3.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연산군의 과오와 연산군을 위한 변론
Ⅲ. 본론2: 광해군의 업적과 과오, 그리고 변론
1.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광해군에 대한 기록
2.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광해군의 업적
3.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광해군의 과오
4. 광해군을 위한 변론과 한계
Ⅳ.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조선왕조에는 왕위에서 쫓겨나 불행한 삶을 마감했던 임금이 셋 있다. 노산군(魯山君, 1452~1455), 연산군(燕山君, 1494~1506), 광해군(光海君, 1608~1623)이 바로 그들이다. 노산군은 어린나이에 즉위하여 숙부 수양대군에 의해 왕권행사 전에 몰려났으므로 이에 대한 동정적 서술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노산군은 뒷날 단종(端宗)이란 호칭을 회복하고 복권되었다. 그러나 연산군과 광해군의 경우는 다르다. 영화·드라마·소설 등에서 주로 연산군과 광해군의 폭정만을 부각하기 때문에 대중들은 이들을 ‘기릴 업적 하나 없는 폭군’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연산군과 광해군이 평가절하되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들은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한 전반적 사료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대한 신뢰성을 문제 삼았다. 조선왕조에서는 재위에 있던 왕이 죽으면 다음 왕이 그에 대한 실록을 편찬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사관들의 주관이 개입되어 그 내용이 공정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연산군과 광해군의 경우 그들을 왕위에서 끌어내린 자들에 의해 일기가 편찬되었기 때문에 그 신뢰성이 더욱 의심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사관의 주관성이 개입되었다 하더라도 엄격한 규율에 따라 편찬된 조선왕조실록의 사료로서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발표자는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연산군과 광해군의 업적과 과오를 나누고 과오에 대한 변론을 들고자 한다. 발표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될지 밝히는데 앞서 일단 실록이 완성되는 과정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연산군일기》를 비롯한 모든 실록의 경우 완성되기까지 네 번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