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19세기 여성과 20세기 여성의 비교
- 최초 등록일
- 2010.06.04
- 최종 저작일
-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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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프랑스 문학과 예술기행 수업 시간에 제출한 레포트입니다.
19세기의 종속된 여성상과 20세기의 자주적인 여성을 대표하는 코코샤넬을 비교했습니다.
목차
19세기 매춘부의 잘못된 교육
마네의 ‘올랭피아’
20세기 여성 예술가들의 초상
본문내용
19세기 매춘부의 잘못된 교육
19세기 매춘부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 부류의 여성들은 일기나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았으며 흔한 편지조차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매춘부들은 자신의 기록을 남기는 것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매춘부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들을 통제하려 했던 사람들과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방법뿐이다. 19세기 매춘부 여성은 타락하고 위험한 존재로 여겨졌다.
처음부터 매춘부는 통제주의적인 담론 속에서, 특히 파랭 뒤샤틀레 파랭 뒤샤틀레 .「파리의 매춘」의 저자 빠랑 뒤샤틀레는 “매춘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성적 욕망을 가지고 있는 남자는 당신의 딸들과 가족을 타락시킬 것이며 가정내의 불화를 야기할 것이다"며 매춘을 ‘병든 사회의 필수불가결한 배출현상’이라고 규정했다. [출처] 영국, 프랑스 등 성노동자 권리 법으로 보호|작성자 외눈박이
의 저작 속에서 자연스럽게 천성적으로 혹은 그녀의 ‘천한` 출신으로부터 비롯된 천성적인 난잡함으로 인하여 사회 질서를 형성하는 본질적인 가치들을 거역하는 여성처럼 표현된다. 그런데 교회와 학교는 그러한 가치들을 주입하려고 조력한다. 이러한
마네의 ‘올랭피아’
재밌는 것은 다른 한쪽의 19세기 매춘부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어렵고 어둡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부터 직업으로 자리매김한 매춘부는 역사상의 오래된 직업 중 하나로 꼽힌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춘희>로 상징되는 고급 매춘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창녀와 정숙한 여성의 중간형 인간으로, 연애도 하고 사교계에서도 활동하는 여성들이었다. 교양이나 사교성을 갖추고서 정치나 사교생활 또는 유행에도 굉장한 영향을 미쳤다. 19세기에 가장 유명한 매춘부는 마네의 <올랭피아>였다. 당시 살롱에 이 작품이 전시되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당시 언론들은 이 작품을 맹렬히 비난했고 살롱은 욕설과 야유가 난무했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여성의 누드화는 신성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 당연히 여겨졌다. 그러나 이 그림은 투박한 몸매와 정면을 약간 풀린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창녀의 모습이었다. 이 그림을 보면서 부르주아 남성들은 감춰오던 자신의 밀애를 들키기라도 한 것 마냥 불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올랭피아>의 올랭피아는 풀밭 위의 점심에 나오는 모델과 같은 빅토리아 뫼란이다. 상대를 쏘아보는 눈빛에서는 당당함마저 느껴진다. 당시에 ‘올랭피아’는 우리나라의 ‘춘자’처럼 당시 매춘부들이 주로 사용하는 이름이었다. 당시에는
참고 자료
안드레아 와이스, <파리는 여자였다>, 에디션더블유
알랭 코르뱅, 「시간, 욕망, 그리고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