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원인
- 최초 등록일
- 2010.02.17
- 최종 저작일
- 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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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원인에 대하여 내부적인 원인과 외부적인 원인으로 나누었다.
목차
1. 내부적 요인 : 일본의 국력증대와 불만족도 증가
2. 외부적 요인 : 일본의 외교적 지위상승
본문내용
1. 내부적 요인 : 일본의 국력증대와 불만족도 증가
☐ 산업화와 군사개혁을 통한 부국강병 추진
일본은 1854년 서양세력의 위세에 눌려 개항한 이래 국내적으로는 산업화와 군사개혁을 통한 부국강병을 추진했다. 급속한 서구화 정책을 통해 유럽 국가들이 수백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를 그야말로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국력증대의 속도 면에서 서양 국가들이 수백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룩했던 것을 불과 40~50년 만에 이뤘던 것이다. 이처럼 근대 일본 산업화를 통한 ‘부국’과 군사력 증강을 통한 ‘강병’을 동시에 추구했던 이면에는 메이지 유신을 단행했던 정치․사회개혁이 있었다.
일본은 유신 초기에는 고대 천황제의 정치체제를 본받기도 했으나 곧 서구적인 정치체제를 도입하여 정책결정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높였다. 이는 단기간에 산업화와 군사력 증강을 이루는데 근본적인 밑거름이 됐다.
☐ 국력의 한 요소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
인구 증가현상은 근대화 과정에서 산업부문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군사력 부문의 병력을 제공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메이지 시대 일본의 주요 경제지표를 참고하면 1868년 메이지 유신이후 러일전쟁이 발발한 1904년까지 약 36년 만에 인구가 약 75%이상 증가하였는데 이는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인적자원을 공급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물론 당시 인구증가에는 출생률이 증가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의료기술 발전에 따른 사망률 감소현상이 두드러졌다.
☐ 정부의 재정․산업정책과 민간자본이 성장-산업부문의 기반을 다짐
산업화의 진전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드는데 긍정적 기여를 했다. 특히, 메이지 일본이 근대화된 군사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군대를 확대․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재정적 뒷받침을 하는데 있어 산업화를 통한 경제발전은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1873년 징병제를 실시하여 병력을 증가시키고, 최신 함정 등 근대 무기를 도입하는데 있어 정부 재정을 뒷받침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바로 산업화가 있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http://blog.naver.com/wldnjsehfud?Redirect=Log&logNo
http://bbs5.worldn.media.daum.net/griffin/do/photo/read?bbsId=361&articleId=33341
노일전쟁의 세력전이론적 분석/박재갑
국제관계로 본 러일전쟁과 일본의 한국병합/최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