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유물
- 최초 등록일
- 2009.12.17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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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유물
1. 생활도구
2. 무기
3. 장신구
4. 종교
Ⅲ.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고구려는 B.C. 3세기 초부터 A.D. 7세기 말경까지 존재한 지난 날의 우리나라 역사에서 넓은 영토와 발전된 문화를 가진 가장 강대했던 나라였다.
고구려 사람들은 일찍이 고조선의 변방이었던 혼강유역과 압록강중류일대에서 고조선과의 발전된 경제와 문화를 이어 받으면서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여 왔다. 고구려는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그 유민들을 받아들이는 한편 주변의 여러 소국들을 병합하여 나라의 위력을 더욱 강화하여 왔으며 고조선과 부여의 옛 영토를 되찾기 위한 반침략투쟁을 힘 있게 벌려 4세기경에 이르러서는 한반도의 중부와 요하계선까지 포괄한 광대한 영토를 가진 봉건국가로 장성 강화되었다. 특히 427년에 집안일대로부터 수도를 평양의 안학궁일대로 옮기고 586년에 다시 평양성으로 옮겼던 시기 고구려의 위세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 시기에 고구려는 세 나라 통합을 위한 남쪽지역으로의 진출을 강화함으로써 충청남북도의 적지 않은 지역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건국 초기부터 고구려는 다른 나라의 빈번한 무력침공을 물리치면서 나라의 자주권을 고수하기 위한 투쟁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의 역대 봉건국가들과의 경제, 문화교류사업도 추진시켜왔다. 외래침략세력을 반대하는 투쟁과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고구려인들의 창조적 활동을 통하여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일대에서 영토적으로 광대하고 군사적으로나 경제, 문화적으로 강력한 나라가 되었다. 이 시기에 특히 고구려의 농업과 제철업을 비롯한 수공업과 과학기술은 매우 높은 수준에 있었다. 고구려가 다른 나라들보다 먼저 그리고 높은 수준에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성행한 고조선과의 발전된 경제와 문화를 계승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그가 차지하고 있던 지역의 유리한 자연 지리적 조건도 능동적으로 이용하였던 것과도 관련된다. 이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금, 은 구리, 철 뿐만 아니라 나무와 석재 등도 매우 풍부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풍부한 자연적 조건은 경제발전의 좋은 조건을 지어 주었던 것이다. 고구려의 발전된 문화는 유적과 유물로 많이 전하여 지고 있다.
참고 자료
한국 고고학강의 - 한국고고학회 『사회평론』
고구려유물 - 김영진저 『백산자료원』
조선유적유물도감4 - 『민족문화출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