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연 <애국부인전>
- 최초 등록일
- 2009.10.31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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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줄거리, 작가 소개, 작품 해설, 소설의 시대적 배경, 교과서 학습활동 및 해설
목차
-장지연
-줄거리
-핵심정리
-해설
-한계점과 의의
-창작에 가까운 번안소설 「애국부인전」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창작된 「애국부인전」
-여성 교육용 교과서로서의 「애국부인전」
-「애국부인전」의 사실 지향
-역사·전기소설 「애국부인전」
본문내용
-장지연
장지연(1864(고종 1)∼1921)은 조선 말기의 언론인·애국 계몽 운동가이다.
그는 1895년 8월 일제의 민비시해 만행이 자행되자 의병의 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지어 각처에 발송하였다. 1896년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고종의 환궁을 요청하는 만인소를 기초하였다. 한편, 독립협회에 가입해 활동하였으며, 1898년 9월 ≪황성신문≫이 창간되자 기자로 활약하였다. 같은 해 11월 만민공동회의 간부로 맹활약하다가 그 해 말 독립협회·만민공동회가 해산당할 때 체포, 투옥되었다.
1899년 ≪시사총보≫의 주필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출판사인 광문사를 설립해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흠흠신서≫ 등을 간행하였다. 1901년 황성신문사의 사장에 취임해 민중 계몽과 자립정신 고취에 진력하였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황성신문≫ 1905년 11월 20일자에 〈시일야 방성대곡〉이라는 제목으로 국권침탈의 조약을 폭로하고, 일제의 침략과 을사오적을 규탄하면서, 국민의 총궐기를 호소하는 논설을 써서 일제 헌병대의 사전검열을 거치지 않고 전국에 배포하였다. 이 일로 체포, 투옥되어 65일 후 석방되었으며, ≪황성신문≫도 압수 및 정간 처분되었다. 이후 장지연은‘슝양산인’이라는 필명으로 1907년 순한글 소설 「애국부인전」을 발표하였다. 「애국부인전」은 프랑스의 민중여성영웅 잔다르크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신쇼설’이라는 표제를 달고 ‘대한 황성광학서포’에서 발행되었다.
이 후 1906년 대한자강회를 조직하고, 국권 회복을 위한 본격적 애국 계몽 운동을 시작하였다. ≪대한자강회월보≫·≪조양보≫ 등에 전 국민이 각성해서 실력을 배양해 구국운동에 나설 것을 호소하는 논설을 다수 발표하였다.
1907년 1월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에 이 운동을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시키고자 신문과 잡지 등에 다수의 논설을 게재해 전 국민이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