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조 도학가와 사장가 문학론
- 최초 등록일
- 2009.10.12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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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도학가의 문학론
⑴ 金淨
⑵ 趙光祖
2. 사장가의 문학론
⑴ 南袞
⑵ 鄭光弼
3. 도학가와 사장가의 문학론 비교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중종반정이 성공함에 따라 조선의 제 11대 왕으로 추대된 중종은 혁명을 일으킨 공신들의 세력에 밀려 실질적인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나약한 국왕으로 그려지고 있다. 당시 중종은 조광조 등 갑자사화로 밀려났던 사림파를 중심으로 현량과를 실시하는 등 철저한 유교적 개혁 정치를 행하여 문벌세가를 누르고자 하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과격한 조광조의 개혁 정책은 보수적인 기득권층인 훈구 세력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그를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지지하던 중종마저도 싫증을 내게 되었고, 특히 조광조의 반정 공신 명부 정리 작업으로 다수의 공신들이 명단에서 이름이 삭제되는 일이 벌어지자 훈구파들의 위기감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결국 중종은 1519년 남곤 및 심정, 홍경주와 계획해서 조광조를 비롯한 다수의 사림들을 실각시켰고, 조광조는 죽음을 당하게 되는 기묘사화가 발생하였다.
이처럼, 중종 조에는 훈구 세력이었던 사장파와, 훈구세력에 대한 반발로 개혁을 하고자 했던 사림파 즉 도학파의 대립이 극에 달하였던 시기였다. 이때의 사장파와 도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남곤, 김정, 조광조등의 문학을 살펴보고 그들의 문학에서 알 수 있는 도학파와 사장파의 특징을 살펴보고 그들의 문학관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도학가의 문학론
⑴ 金淨 (1486 ~ 1520) 沖庵 金淨의 詩文學 . 朴守川 (1999)
金淨은 조선 전기 훈구와 사림의 갈등으로 인해 무고하게 희생된 불우한 개혁가이며 시인이었다. 그는 靜庵 趙光祖와 함께 사림의 대표 격으로 중종조의 정치 개혁에 앞장섰으나, 결국 己卯士禍의 참변을 만나 제주도까지 유배 갔다가 賜死되었다. 그는 36년의 짧은 생애 동안 학문과 자기수양에 정진하면서 아울러 많은 시작품을 남겼다. 조광조등 圖學에만 전념한 여타 사림학자들과는 달리 그는 詞章에도 뛰어나 왕명을 받들어 <郊廟祈雨祭文>등을 찬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시문들은 급작스럽게 당한 士禍로 유실되어 그의 학문과 문학세계가 온전하게 전해지지는 않는다.
김정은 그의 나이 22세(1507년, 중종2년)되던 봄에 실시된 별식에서 甲科 第一名으로 급제해 관직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는 연산군이 폐위되고 진성대군이 중종으로 옹립되어 새로운 정치와 개혁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던 시기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