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부르주아 민족주의자의 실력양성운동
목차
1. 애국계몽운동의 흐름
2.1 물산장려운동
2.2 민립대학 설립운동
2.3 한글보급운동
2,4 안창호의 계몽운동
3. 실력양성운동의 한계와 문제점
본문내용
1. 애국계몽운동의 흐름
한국 근대사에서 있어서 다양한 사건들과 다양한 인물들을 공부하고 이해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 중에서도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의 이론과 실천들은 근대사뿐만 아니라 해방이후의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세력은 해방 이후에 한민당 등으로 극우세력을 형성하고 단독정부수립운동을 펴면서 남한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요성을 생각해 보았을 때,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의 ‘실력양성운동’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 앞선 시기에 펼쳐졌던 운동의 이론과 실천 방향들을 개괄적으로나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먼저 한일 합방 전후, 1910년대, 1920년대를 나누어 살펴보겠다.
1900년대에는 을사조약 등으로 노골적인 일제 침략에 대응하여 신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실력양성에 의한 국권회복운동, 곧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었다. 애국계몽운동을 주도한 전국 규모의 대표적인 단체는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 대한협회(大韓協會), 신민회(新民會)가 있었다. 이러한 한말 애국계몽인사들의 국권회복을 위한 논리는 약육강식(弱肉强食) · 침략경쟁의 국제사회에서 실력의 부족으로는 상실된 국권의 회복은 실력의 양성으로 가능하다는 실력양성에 의한 국권회복 논리, 곧 사회 진화론에 기초한 자강운동론(自强運動論)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타협에 의존하는 외교독립론을 부정하고 우리나라의 독립은 자력으로 해야 한다는 자력에 의한 자강독립론이었으며, 의병투쟁처럼 무장투쟁 노선을 무모한 것으로 비판하고, 장기적 실력양성으로 국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진적인 내용의 운동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애국계몽운동의 내용을 살펴보면, 민중계몽운동과 교육구국운동, 식산 흥업 운동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민중 계몽운동은 신문 잡지 강연회를 통하여 애국심과 교육열, 독립 의지를 고취시켰으며, 황성 신문의 주필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이란 논설로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성토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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