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의 주거, 의복, 식사
- 최초 등록일
- 2009.09.17
- 최종 저작일
- 2009.09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남송시대 항주 사람들의 주거, 생활공간, 목욕문화, 의복과 제도문화, 식생활에 관해 소개하는 글입이다.
목차
● 남송의 주거ㆍ의복ㆍ식사
-주거와 생활공간
-목욕
-의복과 제도의 유행
-식생활
본문내용
● 주거와 생활공간
항주의 모든 시민이 자기 집에서 생활한 것은 아니다. 하층민은 노천이나 배, 군영 등에서 생활하였으며 직업적인 이유로 배 위에서 사는 사람도 있었다. 화재가 빈번했기 때문에 가건물에서 사는 사람도 있었다. 비록 복층주택이 많던 항주였지만 항주도시주민은 너무 많아 살 집이 있다 해도 조그만 방에서 여러 명이 함께 살았다.
건물은 손쉽고 튼튼하게 만들었지만 그다지 경비를 많이 들이지 않았다. 중국의 건축기법으로는 가벼운 재질 기본적인 건자재는 항주의 남방에서 배로 운반해 온 목재와 죽재 이외에 벽돌과 기와였다. 돌은 고급자재였으므로 다리, 난간, 성벽, 불탑 등에 사용되었으며 주택이나 관청의 건자재로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을 사용하여 신속히 지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튼튼했다. 직사각형 모양을 한 이 건물은 또한 구조물 전체를 기초로부터 들어올려 그대로 다른 장소에로 옮길 수도 있었다. 부자들은 대부분 단층주택, 서민들은 복층주택 그러나 건자재 및 구조가 가벼운 것이어서 복층건물이었다고 해서 건축 시 따로 특별한 보강은 없었으리라 짐작된다.
을 사용하였다.
건물의 지붕은 기와로 덮여 끝이 위로 조금 올라가는 기법 이 기법은 13세기에는 아직 새로운 습관이여서 미숙한 편이었다.
을 사용했다. 귀족과 관료의 집, 그리고 관청의 지붕에는 여러 모양의 장식물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서민주택에는 금지되어 있었다.
12세기 북송의 수도 개봉과 같이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던 항주의 지붕에는 개봉과 마찬가지로 2개의 기와가 사용되었다. 하나는 판와(板瓦)라고 불리는 직사각형의 넓적한 기와이고, 다른 하나는 유약이 발라진 동그란 기와 이 기와는 황색, 옅은 녹색, 푸른 구슬색의 유약으로 구웠다. 전자는 점포와 하층민의 집에 사용되었으며, 후자는 관청과 신분이 높은 자의 집에 사용되었다.
였다. 벽면은 필요한 주요구조가 아니었으며, 사각의 격자에 항주의 시장에서 생산한 기름종이를 바른 사각 창은 집에 뛰어난 장식효과를 주었다.
서민거리의 민가는 직접 도로와 면하고 있었는데 이는 남중국 도시의 특징이었다. 창이 없는 외벽은 항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정부관청ㆍ종묘ㆍ궁전ㆍ사원 및 신분이 높거나 부유한 사람의 저택은 이
참고 자료
자크 제르네,『전통중국인의 일상생활』, 신서원,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