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의이해-연암 박지원의 호질
- 최초 등록일
- 2009.08.22
- 최종 저작일
-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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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소설의이해-연암 박지원의 호질
목차
1. 『호질』이 쓰였던 시대적 상황- 변질된 성리학을 통해 인간의 무지를 비판
2. 『호질』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 작품 구조 분석
3. 『호질』에서 표현된 인간 중심적 사고
4. 『호질』의 문학적 가치
5. 참고자료
본문내용
1. 『호질』이 쓰였던 시대적 상황- 변질된 성리학을 통해 인간의 무지를 비판
작품이 쓰였던 조선 후기의 사회는 양난 이후의 피폐해진 현실 가운데 기존의 질서를 지탱하고 있던 성리학적 질서가 그 명분만을 유지한 채 더 이상의 실질적인 정치적 사상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의 집권층과 민중들의 삶을 보다 자세히 고찰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연암이 『호질』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그의 사상적 배경이기 때문이다.
국가에서는 양난 이후의 국가적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공명첩 과 납속책 을 남발하고 공노비를 평민으로 승격하는 등의 국가적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리고 상업자본의 대두로 인한 도시문화의 발달과 함께 농업기술의 발달로 농업생산성이 높아지며 부농이 발생하게 된다. 상업적 기능이 강화되며 불법적인 호적의 매매가 성행하였으며, 이로 인해 양반수가 증가하게 된다. 이는 양반으로서의 신분적 우위성을 점하려는 문벌의식을 생성하기에 이른다. 반면에 권력에서 소외된 몰락한 양반과 잔반이 발생하며 기존의 신분질서를 유지시켰던 성리학적 질서는 더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 성리학은 공자의 ‘정명사상’ 즉,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어버이는 어버이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 하여 명분과 그에 대응하는 ‘덕’을 실현함으로써 ‘예’의 올바른 질서가 이루어지는 정명사회의 실현을 추구하지 못하였다. 국가의 정치를 도모하는 대신들은 성리학적 지배적 구조만을 강조할 뿐 양난이후의 피폐해진 백성들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대안을 내어놓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이농을 하거나, 산에 올라가 도적이 되는 등 공동체적 삶의 일탈을 보임으로서 조선은 더욱더 악화일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