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노태우까지의 언론사
- 최초 등록일
- 2009.07.05
- 최종 저작일
-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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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언론사를 전체적으로 정리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독립신문
1896년 4월 7일 서재필(徐載弼)과 개화파가 합작해 창간한 한국 최초의 민영일간지. 국문판과 영문판으로 구성되었으며, 격일간지로 출발해 일간지로 발전하였다. 개혁정책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지지를 얻기 위하여 창간되었다. 그 배후에는 김홍집내각과 박정양내각이 있었다. 가로 22㎝, 세로 33㎝의 타블로이드판 크기로 모두 4면이며 제3면까지는 국문판이고 제4면은 영문판이다. 제1면에는 대체로 논설과 신문사고(광고), 제2면에는 관보·외국통신·잡보, 제3면에는 물가·우체시간표·광고 등을 실었다. 제4면 영문판 《더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는 사설(editorial)·국내잡보(local items)·관보(official gazette) 등으로 구분해 편집했다.
이 신문은 창간 때부터 1899년 12월 4일 폐간될 때까지 4단계를 거쳐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제1기 (1896년 4월 7일~ 1896년 7월 2일)
국민계몽운동을 했으며 당시 정부의 지원을 받았으므로 정부에 대하여 협조적이었다.
제2기 (1896년 7월 4일~ 1898년 5월 11일)
독립협회 운동을 지원했다.
독립 협회(獨立 協會)는 1896년 7월 설립된 조선의 사회정치단체이다. 교과서[1]에는 자유 민주주의적 개혁 사상을 민중에게 보급하고 국민의 힘으로 자주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독립협회를 창립하였다고 씌어 있다. 그러나 발기인이었던 서재필이 남긴 기록에서는 독립문을 건립하기 위한 단체로 나와 있으며,[2][3] 순수 민간 단체이지도 않았다.[2] 더욱이 황국협회와 마찬가지로 황실 및 고위관료가 다수 참여하였고, 황국협회와 대립하지도 않았다. 엄밀히 말해 독립협회 내부의 일부 친일파가 민간 주도의 상업활동을 권장하던 황국협회의 활동을 심각하게 방해하였다.1897년에는 서대문구에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해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웠다.
제3기 (1898년 5월 12일~ 1898년 12월 31일)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