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삼국통일과 외교
- 최초 등록일
- 2009.06.20
- 최종 저작일
- 2009.05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신라의 삼국통일과 외교
목차
0. 서론
1. 삼국시대의 외교
2. 신라의 외교정책의 중심-숙위(宿衛).
3. 나당동맹 VS 여제동맹
4. 신라의 통일-민족의 배반자인가? 아님 승리자인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0. 서론
현재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가 운영에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강력한 군사력? 우수한 기술? 든든한 경제력? 아니면 독특하면서도 뛰어난 문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대외관계, 즉 외교(外交)다.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외교로써 충돌을 피하거나 다른 국가와 동맹을 맺어 충돌에 맞설 수 있고, 외교를 통해 상대 국가와 훌륭한 기술을 공유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원활한 수출입과 투자 같은 경제적, 그리고 문화 교류 등의 국가 활동이 있기 위해서는 든든한 외교정책이 필요하다.
어떤 식으로 외교정책을 펼치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는 좀 더 좋은 모습으로 발전할 수도, 또는 커다란 타격을 입어 최악의 경우 국가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7세기의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전쟁으로 하루하루 조용한 날이 없는, 반도 자체가 전쟁터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혼란과 광란의 시대였다.
그러나 그중에서 특히 신라는 동맹을 맺은 고구려와 백제의 연합공격에 차츰 밀리고 있었다,
고구려는 중국의 수, 당과 몇 년째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도 한편으로는 백제와 동맹을 맺고 북쪽에서 조금씩 신라를 압박하고 있었고, 백제는 거의 모든 군을 총동원하다시피 하며 신라의 성을 차례차례 함락시키며 신라의 수도로 진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나라가 멸망당할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신라가 취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당에게 청병(請兵) : 군대의 지원을 청하거나 출병하기를 청함.
청병(請兵)하는 것.
이에 신라는 몇 년 전부터 계속 펼쳤던 외교 정책-즉 당에게 청병(請兵)을 부탁하는 외교 정책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당은 이에 응해 신라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군사를 파견함으로써 신라의 외교는 빛을 발한다.
참고 자료
<<삼국사기>> 2권
<<삼국사기 연구>> 신형식
<<신라사>> 신형식
<<신라의 역사>> 2권, 이종욱
<<백제의 전쟁>> 백제문화개발연구원
<<패자의 역사>> 구본창
<<한국고대민족사의 탐구>> 신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