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문화사- 제4편 중국의 도서관
- 최초 등록일
- 2019.02.25
- 최종 저작일
- 20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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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책 보존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생기다
2. 송나라, 문화전성기에 도서관이 발달하다
1) 국가기관 도서관
2) 개인도서관
3) 서원도서관
3. 명나라 사립도서관 천일각이 오늘까지 내려오다
1) 천일각의 설립
2) 천일각 도서관 설계
3) 학자에게 개방과 도난
4) 새롭게 변모
5) 현대도서관이 발전하다
6) 대학도서관의 발전
본문내용
책 보존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생기다
중국의 도서관 역사는 서지 혹은 목록 중심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서지가 발달된 것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진나라 시대의 ‘분서갱유’이다.
진시황(BC213)의 분서갱유 : 책을 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 시킨 사건
‧사건의 주역: 이사와 순우월
‧사건의 발단과 원인
‘분서’는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한 후 중앙집권제를 채택하여 군현제를 실시하던 어느날,
잔치에서 순우월이 전국의 안정을 위해서 ‘봉건제도’로 돌아갈 것을 주청하면서 발단됨.
순우월이 ‘옛 것을 모범으로 삼을 것(봉건제도)’을 주청하면서 엣날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진시황을 도와 전국을 통일하는데 일등공신인 이사는 군현제로 전국이 안정되고 있는데 옛 책을 공부한 사람들이 봉건제도가 좋다며 새로운 정책에 대해서 비난하고 있다고 반대했다.
이사는 순우월이 옛 것을 중시하고 현재를 경시하는 경향이 옛날 책 때문이라며 진시황에게 건의하여 옛 서책을 불태우는 명령을 주청했다. 진시황은 진나라 역사를 기록한 책 외에 학자들이 소장하고 있던 책들을 불태우는 분서령을 내렸고, 30일 내에 책을 태우지 않은 사람은 얼굴에 글자를 새겨넣은 후 진시황의 아들이 지휘하고 있는 만리장성 축조에 징용되었다.
분서 이후 진시황은 방사인 노생과 후생이 자신을 비난하고 도망치자, 함양에 있는 460명
이상의 방사와 유학자들을 잡아들인 후, 유학자들에게 이전에 강탈했던 서책을 짊어지게 하고 양산으로 끌고가 서책을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땅속에 파묻었다. 이를 후세 사람들이 ‘갱유’라 불렀다.
분서갱유로 인하여 후대 학자들은 이전에 만들어진 서책에 대한 진본을 파악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방향으로 흘렀고, 그 경향이 서지를 작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송나라, 문화전성기에 도서관이 발달하다
국가기관 도서관
송나라의 도서관은 크게 2가지 축으로 발달되었는데, 국가기관의 도서관과 개인도서관과 공공도서관의 서원도서관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