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한국근현대사 필기자료
- 최초 등록일
- 2016.02.15
- 최종 저작일
- 20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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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04-05 러일전쟁 이후.
위로부터의 개혁 계몽운동, 아래로부터의 개혁 의병항쟁
갑오농민전쟁: 갑자기 튀어나온게 아니라.. 19c 이래로 계속되어왔던 민란(농민항쟁)의 흐름속에 있는 것! 단, 기존의 민란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개항 후 외세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고, 동학이 확산되어 있었음. 특히 삼남지역.
동학: 농민들의 경제적 사회적 조건이 열악해지는 가운데, 현실의 고난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며 자신들의 염원을 담는 사상들이 많이 나타남.(정감록, 미륵신앙,..) 이러한 것들 중 하나. 조직이 있고 교단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민간신앙과 차별성.
동학혁명,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혁명/갑오농민전쟁->똑같은 건데, 왜 이렇게 두 가지 용어로 갈라지지? 주체가 누구냐. 전자는 주 세력을 동학으로 보는 것, 후자는 주 세력을 농민으로 보는 것. 전자는 이 사건에 있어서 동학의 위상을 높게 보는 것. 후자는 동학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위상을 낮게 보는 것.
위의 내용에 대해 자세히 보자.
*19c ‘민란의 시대’
민란의 원인: 1.지주제 발달, 2.삼정문란(전정-토지 세금, 군정-군역, 환정-환곡), 3.조세
신분제가 반영된 조세제도(양반은 군역에서 제외됨), 지주(전호)제-소작제. 지주는 땅 소유자, 전호는 농사짓는자. 대신 생산물의 절반을 바침. 이게 발달하자 자영농층이 사라지고 소작농이 증가함. 이렇게 계급적으로 토지소유가 편중되는 상황이 나타남.=>농민봉기의 경제적 요건
이러한 상황이라 해도, 즉 불만을 갖고 있다 해도, 계기가 없으면 표출되지는 않아. 근데 이러한 계기가 된 것이 삼정의 문란이야. 수령과 향리가 삼정을 징수하는 주도 세력이었는데, 이들의 중간착취가 심했어. 중앙권력에서 지정하는 양보다 더 많이 걷어버려. 근데, 이 삼정의 문란이 왜 봉기의 주된 원인이냐? 농민들한테 공공의 적이 고을의 관리니까... 농민들 사이에도 편차가 있는데, 얘네를 묶어주는 공통의 적이 삼정의 문란을 일삼는 고을 관리들이지!
농민봉기가 일어나면, 다수의 농민들이 집단으로 관아에 처들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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