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사대부들의 소설관 (1) 소설배격론(부정적인 견해) ①조위, 택당 이식, 퇴계 이황, 유몽인, 홍만종, 이이명, 남윤원, 정약용 등 ②소설의 '허구성'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 ... ③민중들을 오도할 수 있다는 소설의 민중적 영향설을 우려(택당 이식) ④윤리적 규범이나 도덕적 가치가 없어 황당무계하고 허망하다는 비판적 태도(퇴계 이황) ⑤그 내용들이 음란하다(유몽인
참으로 애달픈 일이다 -유몽인 논개의 죽음을 칭송한 글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 유몽인의 ‘어우야담’에서 ‘논개는 진주 관기였다’ 라는 구절 때문에, 이후 모든 기록들은 그것을 아무 의심 없이 인용했다. ... 유몽인의 글처럼 논개가 진주 관기였다면, 관기가 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논개는 최경회를 따라서 진주로 왔기 때문에 그의 부실인 논개가 관기가 될 이유가
그런가 하면 유몽인의 에서도 탈을 쓴 광대에 관한 말이 나오고, 여기에서는 유랑광대 남사당패가 있었다는 것과 탈춤을 둘이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 유몽인은 이 두가지 자료를 소개하기에 앞서서 [옛날부터 우희(優戱)를 벌이는 뜻은 보고서 웃자는 것이 아니고, 요컨대 세교(世敎)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데 있다]고 전했다. ... 그런가 하면, 유몽인의 에는 귀석이라는 광대가 했다는 소학지희가 자세하게 나오는데, 그 내용은 지방 수령이 이조판서/병조판서 그리고 대사헌에게 개인적으로 보내는 뇌물만 소중하게
정통 한문학의 동요와 지속 - 유몽인은 방외인의 취향을 이었다. - 혀균은 명문에서 태어나 순조롭게 진출했으나 당시의 지배질서에 대해서 깊은 반감을 품고 이단을 숭상하고 예교에 어긋난 ... 야담이 민요 취향의 악부시와 함께 이단적인 한문학의 주류를 이루고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문학에서 특색 있는 갈래가 되었다. - 유몽인의 은 처음 이루어진 야담집이며 관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