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노사의 굴욕 ? ... 카노사의 굴욕도 간혹 실수를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그러시지 마시라고 말씀드리면 카이사르의 굴욕이라고 쓰신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 이에 하인리히 4세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하인리히 4세가 이탈리아의 카노사(Canossa) 머무르던 교황에게 가서 3일간 읍소하여 파문을 철회하도록 한 사건이다.
이는 교회의 권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11세기에 교황이 서임권을 주장하는 카노사의 굴욕(1077)사건으로 교황권의 강화를 보여준다. ... 독일은 카노사의 굴욕사건(1077)과 결국 서임권을 교황에게 양도하는 보름스 협약(1122)을 겪으며 명목상에 불과했던 왕권, 황제권이 더 약화되었다.
카노사의 굴욕으로 황제를 굴복시킨 이후에도 그레고리오 7세는 슈바벤 공작을 새 황제로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1080년 황제를 다시 파문했다. ... 하인리히 5세는 1077년 카노사 굴욕 이후 1084년 군사적으로 반격해 로마를 빼앗고 교황을 퇴위시키자 그레고리우스 7세는 노르망 왕조령인 살레르노로 피신한다.
이것이 1077년 발생한 카노사의 굴욕이다. 그러나 두 번째는 하인리히 4세의 승리로 연결된다. ... 카노사 굴욕을 당한 가 서임권을 가지고 있던 부분을 교회가 가져오면서 결국 황제의 권력이 약화되었고, 한편으로는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던 성직자 임명권의 악습이 개선되면서 성직 임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