것이 주필산 전투였다. ... 순서가 바뀐 안시성 포위와 주필산 전투 이 영화의 역사 고증 실패는 도입부인 주필산 전투부터 시작된다. ... 주필산과 안시성은 굉장히 가깝기 때문에 주필산에서 당이 대승을 거두었다면 바로 안시성을 공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당의 대군은 무려 50일이나 지체한다.
주필산 전투 이후 고연수가 당 태종에게 항복하고, 연개소문은 바로 설연타와 손을 잡으려고 하는 외교 전략을 구사했다. ... 영화에서의 주필산 전투에서는 태학생도가 중심이 되어 전투를 치르는 듯 서술되었으나, 역사적으로는 태학보다, ‘경당’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 영화 은 위 주필산 전투에서 당에게 전세가 역전당하는 장면에 ‘장손무기 부대’를 등장시키면서 극 중 내용을 역사적 사실에 맞게 재현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백암성의 함락 이후에 당나라군과 고구려 군이 주필산에서 맞붙은 주필산 전투로 이어진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주필산 전투 없이 바로 안시성 전투로 이어진다. ... 바로 주필산 전투는 고구려군 15~20만과 당나라군 50~60만이 맞붙은 1차 고당 전쟁의 최대 전투이기 때문이다. 이 주필산 전투에서 설인귀가 맹활약을 하면서 장군이 된다. ... 2. 1차 고당전쟁에서 주필산 전투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았다? 3. 대조영이 세운 나라는 '발해'이다? 4.
보병-기병 4만명의 궤멸 -요동성 함락으로 사망자 1만명, 군인포로 1만명, 민간인 포로 4만명, 노획 양곡 50만섬 -가시성(加尸城)에서 700명을 개모성으로 이동 중 포획 -주필산에서 ... 암주 3주의 호구를 옮겨 중국으로 들어간 자가 7만 명 기록에 누적된 피해량만 해도 이미 수십만 단위이다. 1차 고당전쟁의 피해는 매우 큰 것으로 특히 국내성-신성 지원군의 궤멸과 주필산에서
강희 황제가 손수 만들었다고 하는 자그마한 탑 수백 깨가 크기는 쌍륙만큼씩 한데 아로새긴 공력이란 귀신을 울릴 만했다. 23)주필산은 용양의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서 당초는 수산이라고 ... 했는데,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할 당시 이 산 위에 며칠 동안 주둔하면서 돌에다가 공적을 새겨 세우고 산 이름을 주필산으로 고쳤다. 24)요하는 승덕현 서쪽에 있는데, 즉 구려하니
전투 연개소문의 지구전에 걸려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주필산에 오래 머문 당군은 결국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구려 방어선의 중심인 안시성)을 함락시키려 하였다. ... 어느 기록이 맞는 것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주필산 전투로 요동지역에서의 당군의 활동이 제약되었다는 것과, 고구려군이 이 때부터 승기를 잡은 것은 확실하다 하겠다. (3) 안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