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농장제도 결국 주호경영의 틀로서 이해할 수 있다. ③ 병작반수형 농장제와 함께 조선 시대 사적 대토지 소유의 또 다른 형태는 병작제였는데 병작이란 토지 소유자가 그 토지를 타인에게 ... 그 상황에서 병작제는 예외적이고 부차적이었다. ... 병작제의 성립 정도를 말해주는 사료들이 있는데, ‘환과고독무자식무노비’로서 3~4결 이하를 경작하는 경우 외에는 병작을 금한다는 기사가 그것이다.
노비를 통해 직접 가작을 하거나 외거노비를 통해 병작반수를 시키거나 타인에게 소작을 주고 수익을 반분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었다. ... 셋째, 농장의 경영에서 농장이 노비와 예속적 노동력에 의해 직영되었다는 견해와 竝作半收制(병작반수제)?分半打作制(분반타작제)로 경영되었다는 견해로 갈리고 있다. ... 전객〔병작지주 ? 전호농민〕’ 관계, 즉 ‘병작적 지주전호제’가 병존하고 있었다.
유랑민은 모아 경작 16 세기 직전법 ( 職田法 ) 폐지 이후 병작반수에 입각한 지주제 확산 3. ... 주변 농민에게 토지 대여 후 경작 ⇒ 수확량의 절반을 소작료로 소유 ‘ 병작반수 ( 竝作半收制 )’ 유행 수취체제를 정비하다 3 조선의 수취체제 전세 공납 역 ▼ 군역 요역 ▶ 과전법
결국 조선 전기 양반 사대부 계층은 재지 지주층이 그 중심이 되었고, 병작반수가 그 기본적 생산관계였다고 보았다. ... 그러나 이영훈은 도지는 두 가지의 경우에 발생하는데, 하나는 궁방전이나 아문둔전에서 발생하며 이것들이 사적지주를 강화시킨다고 이야기하며, 다른 하나는 병작반수에서 도지제로 가는 것이
(병작반수형) 농장제와 함게 조선 시대 사적 대토지 소유의 또 다른 형태는 병작제였다. ... 이와 같이 품관, 향리나 지방 토호 그리고 대권세가등이 그들이 초납한 협호, 은정 등을 병작반수의 형태로 농업 경영에 투입시킬때, 우리는 이 형태를 조선 전기 대토지 소유의 또 다른 ... 한 형태로서의 병작제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