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는 ‘삼국유사 에는 궁파(弓巴)로, 김부식의 ‘삼국사기 에서는 궁복(弓福)으로 기록되어 있다. ... 때문에 김부식은 반역자로 낙인찍혀 죽은 장보고를 성도 없는 섬 출신의 미천한 궁복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에서는 장보고를 평가절하 할 이유가 없었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서는 문성왕(文聖王) 7년(845)에 문성왕이 궁복의 딸을 둘째 왕비로 삼으려 했고, 8년(846)에 궁복이 난을 일으키자 염장이 궁복을 죽였으며, 13년 ... '삼국사기'에서는 '궁복(弓福)'이라고도 하였는데, 궁복이나 궁파로 불린 것은 성씨가 없는 미천한 신분 출신이었음을 의미한다.
적의는 이 옷에 꿩 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4 궁복 철릭철릭은 조선시대(1392-1910) 초기부터 왕 이하 백관들의 관복의 밑받침 옷이었습니다. ... 4 궁복 면복과 적의면복은 면류관을 쓰고 곤복을 입는 것인데, 면복은 군왕의 표식으로 삼았던 것이며, 왕이 종묘사직 등에 제사를 지내고, 정조, 동지, 조회, 수책, 납비
언급된 바와 같이, 장보고(張保皐)의 다른 이름은 궁복(弓福), 궁파(弓巴)이다. ... 궁복 은 장사를 아꼈던 터라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이끌어 상객으로 삼고, 그와 더불어 술을 마시면서 매우 기뻐하였다. ... 급기야 궁복 이 술이 취하자 그의 칼을 빼앗아 목을 벤 뒤 마침내 그 무리를 모아놓고 설득하니, 그들은 엎드려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런데 마침 장보고의 수하였던 염장이 나서며 '저는 맨주먹만 가지고 궁복의 목을 베어 바치겠나이다.'라고 말을 하니 문성왕은 반갑게 그의 말을 따랐다. ... 문성왕은 즉위를 하자마자 장보고를 진해장군으로서 봉하게 되고, 장복이라는 이름을 하사를 하면서 '청해진 대사 궁복(장보고)이 선왕을 도와 대적을 격멸하니 그의 공로를 잊을 수 있겠는가
본래 이름이 궁복이었던 장보고는 중국에 있을 때 궁복의 ‘궁(弓)’자와 비슷한 장씨라는 성을, 보고라는 이름은 ‘복(福)‘의 음을 그대로이런 명칭이 없다. ... 우리측 기록에는 활보, 즉 궁복(弓福)또는 궁파(弓巴) 그리고 장보고(張保皐)로 되어있고, 일본 측 기록에는 장보고(張寶高)로 기록 되어 있다.
또 그의 뒤를 이은 문성왕은 청해진 대사 궁복은 일찍이 군사로서 신고를 돕고 선조의 거적을 토벌했으니 그 공로를 어찌 잊으랴? ... 어린 시절 장보고는 활을 매우 잘 쏘아 궁복 , 궁파 등으로 불리었다. 중국의 두목 이지은 『번천문집』에 따르면 장보고에게는 정년이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중국 사료에서 장보고(張保皐)라 하고 일본 사료에서 장보고(張寶高)라 부르며 한국 측 사료에선 弓(궁복 궁파)을 성이라고 하고 있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장보고의 이름 장보고의 이름을 번천문집에서는 장보고라고 하며 삼국사기 권 10, 11에서는 궁복이라 하며, 삼국유사에서는 궁파라 부르며, 입당구법순례행기와 속 일본후기에서는 장보고라고
‘해신’에선 궁복과 궁복의 의동생이 사막을 건너 노예로 팔려가다가 길을 잃어 고초를 겪는다. ... 2009년 인기리에 방영한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면 주인공 덕만(선덕여왕)이 유년 시절 수나라에서 보낸 이야기가 나온다. 2004년에 방영한 드라마 ‘해신(海神)’에서도 주인공 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