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문화]해상왕 장보고
- 최초 등록일
- 2006.11.18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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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해상왕 장보고의 해상무역에 관한 내용을 전반적으로 쓴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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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상왕 장보고
1. 신라의 한 섬 출신 젊은이
- 섬 출신 젊은이가 당나라의 장수가 되다.
2. 동북아 해상무역의 중심지 청해진
- 청해진의 대사가 된 장보고
- 외국에서의 활동 터전을 마련하는 장보고
3. 세계적인 해상활동의 전성시대
- 해적 소탕으로 해상의 평화를 가져온 장보고
- 국제무역의 시대를 연 장보고
- 당나라와의 무역
- 일본과의 무역
- 이슬람상인과의 무역
4. 장보고의 죽음과 청해진의 쇠퇴
- 신라내의 정쟁으로 피살되는 장보고
- 장보고가 없는 청해진
5. 해상왕 장보고를 본받자.
- 장보고의 정신을 본당아 계승하자
〈참고문헌〉
본문내용
해상왕 장보고
윤재운 교수님의 한국전통문화의 이해라는 강의를 들으면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중요하게 다룬 해양문화와 관련 있는 고대사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장보고 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0여 년 전 제해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장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신라, 당나라와 일본을 상대로 중계 무역을 하고 또 중국에 오는 이슬람 상인과도 교역하는 등 동아시아의 해상의 무역을 독점하였고, 해적에게 납치되어 노비로 팔려나가는 신라인들을 구하였고, 중국에서 신라 그리고 일본에 걸쳐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중심에서 이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해상왕 장보고에 대해 조사해보려고 한다.
1. 신라의 한 섬 출신 젊은이
섬 출신 젊은이가 당나라의 장수가 되다.
한마디로 장보고의 어린 시절 기록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가 섬 출신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기록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일수도 있다. 또 지배층의 가문이 아닌 평민이나 천민의 집안에서 태어난 하층민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땅 끝이라 불리는 서남해안의 굴곡 있는 해안선과 함께 다도해의 많은 섬들 중 7번째로 큰 완도에서 장보고는 태어났다.
어린 시절 장보고는 활을 매우 잘 쏘아 ‘궁복’, ‘궁파’ 등으로 불리었다. 중국의 두목 이지은 『번천문집』에 따르면 장보고에게는 정년이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둘 다 싸움을 잘하고 창을 다루는 솜씨가 출중했으며 말 타는 기술이 훌륭했다고 한다. 장보고가 정년보다는 10살 연상이지만, 둘이 함께 당나라를 건너갈 만큼 아주 친했다고 한다. 당나라에 건너간 장보고는 ‘궁’자를 변으로 하는 ‘장’이라는 성을 사용했다.
장보고가 왜 당나라에 갔는지는 자료가 없어서 알 수 없으며, 이 당시 9세기 초의 신라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사치와 향략의 생활에 젖은 귀족층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신분의 차별을 두는 골품제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런 연유로 장보고는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당나라로 갔다고 볼수 있다. 20세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들처럼 9세기 초에 신라의 한섬출신 젊은이는 ‘당 드림’을 꿈꾸며 바다를 건너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