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에 관하여- 당대 사료비판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23.03.14
- 최종 저작일
- 2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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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보고에 관하여- 당대 사료비판을 중심으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장보고의 생애
1) 장보고 활동의 시대적 배경 1-
2) 청해진의 건설과 번영
3) 장보고의 반란과 암살
4) 장보고의 한계
3. 결론
본문내용
서론
장보고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동양 세계의 바닷길을 장악하여 해상권을 지켜낸 영웅이다.
장보고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기록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의 기록에서는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두목(杜牧)의 ≪번천문집≫에 장보고가 등장하는데 두목은 장보고를 ‘인의지심이 충만하고 명견을 가진 인물’이라고 평가했으며, ‘나라에 한 사람이 있으면 그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을 빗대어 장보고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일본의 승려 엔닌은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 장보고의 도움을 받은 일을 기록했고 일본에 적산 선원을 세워 제자들에게 적산 명신을 봉제하게 하면서 장보고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이처럼 한 개인이 동양의 해양을 지배한 일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장보고의 영향력이 우리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동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는 증거이다. 이렇듯 장보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타국에서 발견되는 반면에 우리나라의 기록은 오히려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장보고에 대한 기록이 ‘반역자’, ‘미천한 해도인’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에 의문을 표하며, 장보고의 생애를 살펴보고 두 사료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기 위해 글을 쓰려 한다.
본론
장보고의 생애
장보고의 원래 이름은 궁복(弓福), 활 잘 쏘는 사람이라는 의미(활보)이며, 유년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가 청해진을 설치한 것이 완도지역이기도 하고 장보고의 동향 후배인 정년이 당나라 서주(徐州)에서 “기한으로 죽는 것보다 싸워 죽는 편이 나은데, 하물며 고향에서 죽으니 바랄 것이 없노라”고 하면서 청해진으로 돌아오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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