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유는 후반기에 들어 전문적인 가객 층이 등장하여 많은 작품을 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시조의 창작 계층에는 크게 양반 사대부 계층, 임금, 기녀, 평민 歌客(가객)으로 나눌 수 있다. ... 이 시기 평민(가객)이 애정 시조 중심 작자 층으로 나타난 현상은 시조 문학사의 일반적 흐름과 일치한다.
면앙정가단은 그 후에 나타난 호남의 성산가단, 영남의 경정산가단·노가재가단 등의 선구이며, 전문 가객 중심이였던 영남의 가단과 달리 사대부 출신의 문인 가객이 중심이었다. ... 또한 송순은 면앙정에서 면앙정가단을 이루어 임제·김인후·고경명·임억령·박순·이황·소세양·윤두수 등 많은 학자·가객·시인들이 출입하며 창작의 산실로 삼았다.
위항시인의 한시는 독자층과 작자층이 거의 일치하는 정도에서 그쳤으나 전문가객의 시조는 창을 통해서 수용자와 만났을 뿐만 아니라 20세기에 이르도록 끊임없는 평가를 누렸다. ... 그리고 김천택이 『청구영언』을 편찬할 때 서문을 써주었고 거 문고와 노래로 이름을 얻었다는 것을 보면 김천택의 가객 노릇을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⑤ 홍신유: 역관 집안에서 문과에 ... 자유분방한 성 격과 파격적인 행동으로 유명하다. 4 전문가객의 기여 위항문학이 ‘노가재가단’의 중심인물로서 김우규, 박문욱, 김중열, 김묵수와 함께 앞세대와는 다른 기풍을 조성하였다
결국 시조 연행의 수요가 증가하고 이것이 가객이라는 가악의 전문가들이 등장하였다. ... 가객들을 후원하면서 이들과 가악의 연행을 함께하는 후원자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 이 뿐만 아니라 18세기 전반의 대표적인 경화사족들이 지은 장시조가 많다는 기록을 미루어 보더라도 가객들이 개발한 새로운 가악은 빠른 속도로 상층 사대부 층으로 까지 확산되어 도시
대중적인 창법으로 18세기에 새로이 등장하였으며 전문 가객이 아니더라도 쉽게 부를 수 있었다. ... 전문가객은 18세기 무렵부터 등장하였으며, 신분은 대체로 중인보다 낮은 서리 정도로 시조를 가곡의 곡조에 얹어서 불렀다. ... 전문 가객 중심의 가단이 형성되고 시조집이 편찬되는 등 조선 후기에 이르러 시조는 국민 문학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때문에 를 재담소리라고 하여 한편으로 제쳐 놓던 가객들도 있었다고 한다. ... 임금이나 사대부들은 판소리 가운데서도 가객이 목청이 당당하고, 호령을 하듯 소리를 질러야 하고, 부침새를 잘 구사해야 하는 를 특히 좋아하여 많은 명창들이 다투어 를 불렀다고 한다. ... 이야기, 중국의 '은혜를 갚은 누런 새' 이야기 따위에서도 보이듯 아시아에 널리 퍼져 전해 내려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전해오는 이런 이야기를 조선 왕조 어느 때쯤에 가객들이
조선 후기에는 전문적으로 시조를 짓고, 노래를 부르는 가객들이 나타나 그 작가 층이 더욱 확대되었다. ... 이렇듯 서민계층으로 흘러들어간 시조는 사설시조라는 새로운 형태의 시조를 낳았는가 하면, 지난날의 시조를 수집·정리하는 가집 편찬이 평민 가객들 사이에서 성행하였다. (1) 사설시조
이들 가객과 평민층의 시조 애호자들은 사대부들과 달리 시조를 절실한 자기표현의 양식으로 받아들였으며, 경험과 감정을 표현하는 진실성의 가치를 강조했다. ... 수용에 관여하는 계층의 확산과 중심이동 현상이 나타나면서 시조는 좀 더 평이하며 대중적인 친화력을 가진 창법으로 불리게 되고, 중인층 가객에 의해 많은 가집들이 엮어지게 된다.
쉴 새 없는 소극장 공연을 통해 ' 통기타 정신의 파수꾼 ' 으로서의 트레이드마크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 2. ' 민중의 가객 ' 이 되길 바랬던 가수 멀리는 저 70 년대부터 ... 비합법 , 혹은 혹은 반합법 공연에서 그의 「 녹두꽃 」과「이 산하에」에 매료된 진보적인 대중들은 그가 김민기와 한돌 , 그리고 정태춘으로 아슬아슬하게 명맥을 이어 내려온 ' 민중의 가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