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의 해외원정
- 최초 등록일
- 2009.03.28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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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콜로키움임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토론강의 시간에 발표했던 자료입니다.
중국왕조가 정화의 해외원정을 지원했다면 아메리카 땅이 어떻게 되었을까에 대해
조사 토론한 내용입니다.
물론 A+받았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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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정화(鄭和)는 `중국의 콜럼버스` `바다 실크로드의 개척자`로 불리며, 중국의 대 해양 시대를 연 인물이다. 그는 1405년부터 1433년까지 29년 동안 남해 항로를 개척하여 인도양을 건너 페르시아 만과 동북 아프리카까지 진출해 중국인들의 활발한 해외진출을 촉진시켰다. 정화의 남해원정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해상선단으로, 당시 명나라의 위업을 널리 알렸다.
나는 만약에 중국왕조가 정화의 남해원정을 장려했더라도 아메리카는 중국 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화가 남해원정을 나설 당시 이 원정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명나라 황제에게 귀한 물건들을 진상하기 위한 것” 이었으며 둘째는 당시 명나라 황제가 강제로 퇴위시킨 선황제가 어딘가로 도망가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에 혹하여 그를 찾아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본다면 남해원정은 조공무역을 위한 것 혹은 이 당시에 소설 ‘서유기’가 간행되어 일반에 굉장한 평판이 나돌고 있었기에 영락제의 공상을 한번 실험해 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 이 원정으로 인하여 그때까지 이름도 몰랐던 수많은 보물을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또한 정화가 원정을 떠났던 이시기 동양에서는 주자학에 의한 위선적 명분론이 지배하던 시대이다. 중국은 오랜 세월 `오랑캐`들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비록 한때지만 송나라가 중화사상을 체계화 하려 하였으나 힘이 약해 중화사상을 실현하지 못하였다. 명나라 시대에야 이르러 비로소 중화사상을 체계화 할 만 한 힘을 갖추고 황제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한족왕조가 들어서게 되었다. 오랜 세월 꿈으로만 간직해왔던 중화사상을 명나라 개국 초부터 주변에 강요한 것은 당연한 맥락 이었을 것이다. 영락제 시대 정화의 남해 원정은 바로 그 작업의 일환이었다.
참고 자료
이동윤『세계사개론』일지사, 1979
미야자키 마사키쓰『정화의 남해 대원정』 일빛, 1999
조갑제「조갑제 기자의 하버드 연수보고」 월간조선, 19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