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죽림칠현과 청담사상 삼국지에 관한 이야기
목차
Ⅰ.혼란 속의 빛
Ⅱ.유가의 正名論 Vs 노장의 無名論
ⅰ.정명론
ⅱ.무명론
Ⅲ.청담사상의 발달과정
Ⅳ.7인의 이야기
ⅰ.몽환적 인생관
ⅱ.왜 나의 잠방이 속에 들어오는가
ⅲ.지독한 낭만주의와 자연주의
ⅳ.혼란기 지식인의 초상
Ⅴ.7인의 최후
본문내용
삼국시대의 회오리가 5·60년간 휩쓸고 난 뒤, 북방의 조위(曹魏)가 우세를 점했지만 천하는 여전히 혼란이었다. 서쪽의 유촉(劉蜀) 동쪽의 손오(孫吳)도 결국 모두 지역 할거세력에 불과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소멸되었고, 새로운 정국의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종전 사민계층(士民階層)의 신흥세력은 줄곧 건국의 질서와 민생의 해결을 주장했다. 그리고 조씨 부자가 신흥세력을 대표하여 정권을 취해 북중국을 평정하면서, 마침내 새 왕조의 질서가 성립되었다. 하지만 백성들의 고통스런 삶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일부 민감한 지식인들은 이러한 현실에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신흥세력 내의 분열을 통해 등장한 사마씨(司馬氏) 부자의 정치세력은 점차 조씨 세력과 다투게 되었다. 이로써 사회개혁에 대한 갈망과 민생회복의 기회는 지난 일이 되어버리고, 아무런 희망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매우 저조한 사회적 정서 속에서, 문학도 삼국시대 초엽과 같은 격앙하고 강개한 기상을 잃게 되었다. 그저 침울과 실망의 광소(狂笑)만이 남았으니, 이러한 저기압이 문단 전체를 휘감고 급기야 미친듯한 행동으로 세상을 비웃었던 ‘죽림칠현’이라는 문인들의 출현을 하게 된다. 이들의 조소의 이유를 알아보자.
-혼란 속의 빛-
환관이 권력을 휘두르는 시발점인 후한 제4대 화제(和帝)에서부터 환관이 전횡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제11대 환제가 5명의 환관과 모의하여 외척 양가를 멸한 무렵을 경계로 하여 환관 세력이 외척을 대신하게 되었다. 후한의 환관의 경우 조정문란뿐만 아니라 백성의 전답 횡령이나 양가의 부녀 강탈 등 민간에게까지 해를 끼쳤다. 이러한 미친 듯 날뛰는 환관의 횡포를 가리켜 당시 사람들은 ‘탁류(濁流)’라고 불러 원망하고 한탄했다.
이러한 ‘탁류(濁流)’에 대항하는 것이 바로 소위 ‘청류(淸流)’인 사대부(지식인)이었다. 그들은 주로 관료나 태학에서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유교적 교양과 윤리관을 몸에 익혀 환관의 조정 전횡을 엄히 비판했다.
참고 자료
야마구치 히사카즈/전종훈 역, 『사상으로 읽는 삼국지』, 이학사, 2000
짜오지엔민/곽복선 역, 『죽림칠현 뺴어난 속물들』,푸른역사, 2007
풍우란/박성규 역, 『중국철학사』, 까치,1999
이중천/ 양휘웅 역,『삼국지 강의1,2』,김영사, 2006.2008
이나미 리츠코/김석희 역, 『중국의 은자들』, 한길사,2001
박한제,『영웅시대의 빛과 그늘』,사계절출판사, 2003
유의경/김장환역,『세설신어 하』,살림출판사,2000
장자/기세춘 역,『장자』권2「거협편」,바이북스,2007
노자/이석명 역,『도덕경』권1.소명.2005
사진자료- 네이버 이미지
◎참고 사이트-네이버 블로그,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