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 비평문
- 최초 등록일
- 2008.12.29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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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를 처음 비평해보는 대학생에게 추천합니다
목차
▶잘한 점
1. 농민운동에 동학을 결합시켰다.
2.포접제를 활용하였다.
3.전근대적인 봉건 지배 체제의 청산과 사회적 모순 및 비리의 제거 경제적 폐습타파와 평등의 구현에 힘썼다.
4. 반봉건적 혁명 뿐 아니라 동학농민군이 추진했던 반외세의 자주독립정책 측면
▶잘못한 점
1. 동학농민 운동의 참여자는 농민이나 하층민 이었다.
2. 동학농민을 일으킴으로 인해 오히려 외세가 들어올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3. 동학에 너무 의존했다.
-정리-
책 읽은 후 느낀 교훈과 고쳐야할 점
본문내용
1894년 2월 15일, 고부민란 이후 약 1년간 지속된 동학농민혁명은 그 초기에는 지방봉건관리의 불법적인 수탈에 대항하였지만 점차 그 투쟁대상이 중앙의 봉건권력과 침략적인 외세로 옮겨 갔다. 전쟁의 각 단계마다 주요한 공격대상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기본적으로 반봉건․반침략적 성격은 일관되어 나타났다. 동학농민운동은 조선 후기 봉건체제가 그 모순을 드러내면서 이에 저항하는 민중적 세계가 확대된 결과 민중적인 개혁요구를 수렴하면서 문호개방 이후 부가된 세계사적 모순에 대한 투쟁을 결합시킨 것이었다.
전쟁 자체로는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정부로 하여금 농민층의 요구를 반영한 갑오개혁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게 한 데에서도 동학농민혁명이 당시 사회에 끼친 충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농민혁명을 통해 성장한 농민군의 구성원들은 그 뒤에 일어난 반일의병전쟁이나 영학당․활빈당운동 등에도 계속 참가함으로써 반봉건․반침략운동의 중심세력이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실로 자주적인 근대화를 달성하려는 민족운동의 최고봉이었으며 한국근대사의 일대 전환점이었다. 즉, 국내적으로는 봉건적 사회질서에 마지막 결정타를 입혔으며 세계사적으로는 제국주의화가 절정에 이른 시기에 열강의 침략에 대한 아시아민중의 반침략의지를 보여준 반제전쟁으로서 커다란 의미를 지니며 식민지하 민족해방투쟁의 전개에 귀중한 역사적 경험이 되었다.
그럼 이제부터 동학농민운동에 대해서 더 자세히 시시비비를 가려보도록 하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