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정국, 그리고 미군정과 소련.
- 최초 등록일
- 2008.12.20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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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해방정국 당시, 미군정과 소련의 한반도전략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면서,
이 둘 모두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목차
미국도 소련도 조선인민에겐 점령군에 불과했다.
미-소 제국주의 이해관계에 분할당한 한반도.
미군정, 조선인민의 해방의지를 꺾다.
소련군은 해방군이었나?
소련군의 행동은 점령군의 것이었다.
미군도 소련도 조선인민에겐 점령군에 불과했다.
본문내용
미국도 소련도 조선인민에겐 점령군에 불과했다.
“1. 조선 북위 38도 이남의 지역과 동지의 주민에 대한 모든 행정권은 당분간 본관의 권한 하에서 시행함.” (1945년 9월 7일 한반도에 대한 맥아더의 최초의 지침인 「포고 제1호」) “한국인도 일본인도 현재의 직장에서 떠나는 자가 있으면 즉시 교수형에 처한다.······당분간 일본헌병과 경찰이 치안을 유지하며 행정업무를 종전과 같이 일본인 도지사와 그 부하가 집행한다.”(1945년 8월 25일 발표된 소련 제25군 사령관 치스챠코프와 일본 관료의 합의내용)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한 후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각각 진주를 시작한 미군과 소련군의 포고는 해방된 조선의 자주권에 대한 완전한 무효선언 이었다. 36년 동안의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해방 되었다고 생각했던 조선민중은 늑대 피하자 범 만난 꼴처럼 거대한 두 제국주의에 다시금 직면하게 되었다.
미·소 제국주의 이해관계에 의해 분할당한 한반도
1945년 8월 6일과 8일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투하하여 수백만의 민중을 대량 학살 함 으로써 사실상 태평양 전쟁은 종결 되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미국과 소련은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개입은 종전에 이미 합의된 사항이었다. 1945년 7월 24일 개최된 미·소 군사회담에서 양국은 극동에서의 작전 범위를 토의했다.
그 결과 해군과 공군의 작전 분담선은 일본의 동북부로부터 대강 한반도의 북부를 연결하는 선으로 확정됐다. 지상군의 분담선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미국 육군성 작전본부(OPD)의 참모장교들은 “아시아대륙에 미국 군사력을 보유하기 위해 한반도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38도선’에 선을 그었고, 소련은 아무 반대 없이 수용하였다. 미·소의 합의내용은 「일반명령 제1호」로 문서화되었는데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코리아를 남과 북, 두 지역으로 분할하고 이남을 미군이 점령한다는 내용 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