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계급 형성에 대한 견해
- 최초 등록일
- 2008.11.20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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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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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비평문입니다. 견해만 들어 있습니다.
본문내용
1970년 11월 13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표준법을 지켜라,” “노동자들을 착취하지 말라,”고 외치며 분신으로 저항한 청계피복의 노동자 전태일의 사건은 한국 노동자 투쟁 사에 획을 긋게 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러나 전태일의 분신이후 연이은 노동자들의 자살시도 등 산발적인 저항들이 발생하고 있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구조적 변화를 초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시도들은 대중들로부터 동점심과 관심을 끌긴 했지만 단발적인 개인적 희생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1970년 중반에 이르러 노조결성을 위한 투쟁들이 발생하게 된다. 당시 노조운동의 결정적 특징은 그 운동이 여성노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것이며, 교회 조직간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청년 카톨릭 단체와 도시산업선교회 등이 주축이 되었는데, 이들 조직들은 소위 노동자들의 의식화를 위해 소규모 서클 활동을 주도했다. 그러면 왜 노동자들은 교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가? 한국노총은 이미 어용화되어 노동자들의 의견을 집약하고 대변하는 기능을 상실했으며, 노동부는 오히려 노동통제의 관료적 기능을 담당했다. 결국 노동운동에 관심을 준 교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교회는 국제적 연결망이 있어 정부의 탄압을 방어하는 데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여성노동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의 연대 속에 진행된 노조투쟁의 대표적 사례로서 동일방직사건을 제시하고 있다. 동일방직사건은 노동운동을 학생운동과 재야투쟁가들과 연대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어 저자는 당시 야당(신민당) 당사를 점거하고 극한 투쟁을 벌였던 Y.H 사건등을 소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은 남성노동자들 보다도 더욱 낮은 임금 그리고 더 많은 착취를 받고 있으면서도 가부장적 원리에 의해 더욱 순종적이고, 저조한 노동조합운동을 벌인다고 인식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