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빈클라인, 청바지의 신화
- 최초 등록일
- 2008.11.18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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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캘빈클라인, 청바지의 신화 라는 주제로 캘빈 클라인의 광고전략을 조사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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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패션계에서 청바지보다 패션 주기에 크게 영향을 받는 분야는 없을 것이다. 잘 팔릴 때는 수십억 달러씩 계속 쏟아져 들어오다가도 유행 주기가 끝나면 농부들의 작업복으로 한 장이라도 팔리면 운이 좋다 싶을 정도로 매출이 시원찮았다. 하지만 청바지는 가장 미국적인 옷이었기에 전도 유망한 미국 디자이너인 캘빈 클라인이 청바지 디자인을 시도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던 일이었다.
1976년에 출시된 캘빈 클라인 청바지는 완전 실패작이었다. 사내에서 디자인되고 제조된 청바지는 50달러의 가격이 매겨졌는데, 이는 글로리아 밴더빌트의 청바지보다 비쌌으며, 고객들은 몸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이었다.
“제대로 된 생산설비를 갖춘 공장에 맡기지 않고 견본 진열실에서 청바지를 만들었어요.” 뱅크스의 말이다. 그 결과 지극히 원시적인 수준의 옷이 나온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청바지의 매출은 극히 저조했다. 클라인은 어느날 새벽 4시, 스튜디오 54의 댄스 플로어에서 피터 킹이라는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오기 전까지는 청바지에서 아예 손을 떼고 있었다. 그는 칼 로젠(carl rosen)이라는 사람이 경영하는 중가의 드레스 생산 업체인 퓨리턴 패션스에 청바지 라이센스를 주면 일년에 프랑크푸르트로 출장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그가 제안한 액수가 결코 적지는 않았지만, 슈와츠에게 전화를 기다리라고 말한 후에는 그 제안에 대해 잠시 잊어버리고 말았다. 캘빈 클라인과 퓨리턴의 계약은 역사상 최대 라이센스 계약의 하나가 되었다. 슈와츠가 협상한 엄격한 계약 조건은 패션업계의 전설이 되었고 캘빈 클라인이란 이름이 맘대로 이용당하지 않고 보호되도록 하는 보호막이 되었다. 캘빈 클라인은 100만 달러의 계약금 외에 계약 기간 동안 매년 최소 100만 달러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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