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을 다녀와서 (레포트 A+)
- 최초 등록일
- 2008.11.04
- 최종 저작일
-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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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창덕궁에 다녀와서 창덕궁 입구서부터 나올때 까지
봤던 거를 순서대로 설명과 사진과 느낌을 함께 올렸습니다
만족하실겁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어느 때 처럼 지루하고 지친 삶을 살아가고 있던 나에게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내주신 과제 덕분에 창덕궁에 갈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여자친구와 함께 창덕궁으로 향했다. 창덕궁은 자유관람이 아니라 시간이 나눠져서 관람을 할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시간이 늦을까봐서 서둘러서 걸으니 창덕궁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평일에 마지막 관람시간이여서 그런지 사람들은 몇 명 없고 한산하였다. 사람이 많은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조용하고 오붓하게 창경궁도 관람하고 데이트도 할수 있는 좋은 시간이였다.
창덕궁은 조선 태종때 완정의 이궁으로 창건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창덕궁은 물론 정궁인 경복궁과 창격궁까지 전소 되었는데 난이 끝난 후 제일 먼저 재건 된 곳이 바로 창덕궁이다. 이는 창덕궁이 여러 왕이 자주 거처하던 궁인데다 경복궁은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이 복구되는 조선 말기 까지 300여 년간 나라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치르는 역사의 주무대가 되었다.
가장 한국적인 정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창덕궁은 우리나라의 6개의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 중의 하나이기도 한 창덕궁은 1997년 우리나라의 궁궐 중에서는 유일하게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창덕궁 안에 있는 수많은 건물들 모두가 세계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창덕궁의 입구인 돈화문을 지나자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다른 나라에 온것 같은 느낌이였고 ‘서울 도심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나’ 할 정도의 숲과 풍경에 뒤를 돌아 입구를 한 번 더 확인하기도 하였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은 보물 제 383호로 지정된 현존하는 궁궐 대문 중 가장 나이가 많다. 일반 백성들로는 감히 들어갈 엄두도 못하던 왕가의 정문인 돈화문은 임금이나 외국의 주요 사신들이 출입할 때만 사용 되었다.
서울에 남아 있는 석교 중 가장 오래된 금천교를 지나서 인정문이 나온다.
보물 제 813호로 지정된 인정문은 임금이 만조백관 신하들과 조회를 하려면 인정전에 모이는데 인정전에 들어가는 관문이 바로 인정문이다.
참고 자료
창덕궁에서 나눠준 책자와 인터넷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