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8.10.14
- 최종 저작일
-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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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서광 김득신. 우선 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보면, 조선의 시인. 본관은 안동, 자는 자공, 호는 백곡·귀석산인, 충무공 시민의 손자, 부제학 안흥군 치의 아들. 어머니는 사천 목씨로 목첨의 딸이고, 아내는 경주 김씨이며,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김득신은 아주 유명한 시인이다. 하지만 그는 천재는 아니였다. 그는 부단히 노력하는 노력가 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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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독서광 김득신. 우선 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보면, 조선의 시인. 본관은 안동, 자는 자공, 호는 백곡·귀석산인, 충무공 시민의 손자, 부제학 안흥군 치의 아들. 어머니는 사천 목씨로 목첨의 딸이고, 아내는 경주 김씨이며,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김득신은 아주 유명한 시인이다. 하지만 그는 천재는 아니였다. 그는 부단히 노력하는 노력가 이다.
그의 성장 배경을 알아보면 그가 천재가 아닌 둔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김득신이 태어 날 때 그의 아버지는 꿈에 노자를 만났다. 그래서 어릴 적의 이름은 노담를 꿈에서 보았다고 해서 몽담으로 지어 주었다.
하지만 신통한 태몽을 꾸고 태어난 김득신은 머리가 너무 나빴다.
10살에야 비로소 글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흔히 읽던 십구사략의 첫 단락은 겨우 26자에 지나지 않았건만, 사흘을 배우고도 하나도 알지 못했다.
저런 둔재가 있느냐고 어느 누가 혀를 내둘러도 아버지는 화내지 않고 되풀이 해 가르쳤다. 아들이 노자의 정령을 타고났으니, 자라서 반드시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하면 아버지는 이렇게 아들을 두둔해 주었다.
“나는 저 아이가 저리 미욱하면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으니 그것이 오히려 대견스럽네.
하물며 대기만성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떠듬떠듬 나아간 공부는 김득신의 나이 20세,
비로소 글 한 편을 지어 아버지께 올리기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그 글을 받아 보고 크게 감격했다. 그 것은 그가 글을 잘 써서가 아니었다. 둔재이면서 노력이란 것을 통해 글을 지었다는 감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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