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드, 오딧세이, 트로이
- 최초 등록일
- 2008.07.17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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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리아드, 오딧세이, 트로이에 대한 건축적 분석
목차
서론
에게문명
미노스문명
미케네 문명
크노소스
크노소스 발굴 과정
크노소스 궁전
하인리히 슐리만
일리아스
오디세이
트로이 역사와 허구, 고대인들의 관점
트로이 전쟁
전쟁의 연대
전쟁 무렵의 미케네
전쟁 무렵의 국제 관계
전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
트로이 성이 함락된 이유
호메로스의 시점에서 본 트로이 전쟁
TROY 현장의 호메로스
참고문헌
본문내용
서론
"그 어떤 묘사도 부끄럽게 만들 만큼 웅장하고 장엄한 산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배경으로 가물거리는 정상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아주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혹시 산 밑바닥에서 지진이라도 일어난다면 트로이 전역을 압도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산이었다." 에드워드 클라크 - 페나리산의 풍경
이 글은 1810년 여행가인 에드워드 클라크가 기록한 페나리산의 풍경이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이곳 페나리 산, 즉 ‘숲이 우거진 트라이카령 사모스의 꼭대기’에서 포세이돈 신이 트로이 전쟁을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만약 이곳을 굉장하고 웅대한 것을 기대 한다면 실망 할 것이다. 트로이는 가로와 세로가 200미터와 150미터밖에 안될 정도로 작기 때문이다.
유명한 트로이의 참모습에 관해서는 오랫동안 알려진 바가 없다. 트로이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증명해 줄 돌멩이 하나조차 남아있지 않다. 트로이는 스트라보의 시대부터 찾았으나 성공하지 못했으며, 루카루스 가 말했듯이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시대에도 찾으려 애썼지만 실패했다. 따라서 그 유명한 도시의 운명에 관한 그의 이야기와 우울한 관찰은 트로이의 잔해마저도 완전히 사라졌다는 결론을 낳는다. 로버트 우드 <호메로스의 저작과 독창적 재능에 관한 논문>(1769)
위 논문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가로 세로가 200미터와 150미터밖에 안 되는 트로이에 대해 고대부터 많은 관심이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기원전 13세기의 역사적 사건과 실제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미루어볼 때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그래서 난 트로이에서 이루어진 발굴과정 , 트로이 전쟁, 트로이 시대 등등을 다루겠다.
에게문명
일반적으로 에게문명이란 크레타 섬, 그리스 본토와 소아시아 서해안의 트로이 등을 중심으로 에게해 주변지역에서 발생한 청동 문명이라고 한다. 이러한 에게문명을 먼저 발달했던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을 받으며 성립되었으며 유럽과 서아시아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참고 자료
1. 일리아드 - 호메로스 지음
2. 오디세이 - 호메로스 지음
3. 트로이 프리아모스의 보물 - 에르베 뒤센 지음
4. 크노소스 그리스의 원형 미노아 문명 - 알렉상드르 파르누 지음
5. 서양문화의 역사 고대편 - 로버트 램 지음
6. 트로이 , 잊혀진 신화 - 마이클 우드 지음
7. 서양건축사 - 비난트 클라센 지음
8. 그리스 예술의 기원 - 밀히호헤퍼 지음
9. 프레이져의 논평 - 윌리엄 블레즈 지음
10. 트로이의 유적 - 하인리히 슐리만 지음
11. 학자저널 - 조르주 페로
12. 에게 문명 - 베르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