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탕반
- 최초 등록일
- 2008.07.05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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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울지역 탕반에 대해서 만드는 방법과 유래등을 설명
목차
1. 양지머리로만 삶은 장국밥
2. 친경으로 생긴 설렁탕
3. 서울 해장국인 선진국
4. 대표적인 서울음식(구절판,떡찜)
본문내용
1. 양지머리로만 삶은 장국밥
맑은 장국에 밥을 말아먹는 일품요리 형태의 음식이다. 이성우는 ‘한국요리문화사’에서 장국밥이 상품화된 시기를 개화기로 잡고, 외식이나 단체급식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복잡한 가정요리법으로는 급한 대로 대응할 수 없어서 요구된 일품요리가 장국밥이라고 했다. 이것이 서울의 향토음식으로 자리하게 된 데에는 장국밥집의 성업도 한몫했다. 장국밥집은 출입구 옆에 하얀 종이술을 만들어 장대 끝 높이 달아 표지로 삼았다. 한말에 유명했던 장국밥집은 수표다리(현재의 장충단공원 입구에 위치) 건너편과 백목다리(현재의 신문로에서 정동으로 통하는 길) 건너편에 있었는데, 수표다리 쪽에는 재상들만 다니고 백목다리 쪽에는 부상(富商)과 오입장이들이 다녔다고 전해진다.
박종화는 ‘잠바위설렁탕 기타’에서 장국밥집에 관해 이와 같이 회고 하고 있다.
「장국밥은 순전히 양지머리로만 삶기 마련이다. 양지머리국물 같은 쇠고기라 하나 노리지 않고 기름기가 맑고 가벼워 같은 쇠고기로 끓였건만 다른 잡고기 삶은 국이 감히 따라가지 못한다. 서울의 유명한 무교탕반의 전신은 양보 장국밥집이고, 양보는 갑오경장 전후의 사람이다. 이 집의 장국밥은 양지머리만 삶아도 맛이 좋은데, 유통(젖퉁이고기)을 넣어주고 갖가지 양념으로 고명을 한 산적을 뜨끈뜨끈하게 구워서 넣어주니 유통과 산적 맛이 서로 어울려 천하진미가 따로 없다.」
장국집 무교탕반은 그 역사가 깊었던 듯, 헌종도 미행으로 무교탕반에 다녔다 하고 남북촌 양반들도 초롱을 든 상노를 앞세우고 무교다리 장국밥집을 찾았다고 한다.
2. 친경으로 생긴 설렁탕
홍승면은 ‘백미백상 百味百想’에서 장국밥이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갖춘 사람들이 먹던 음식이라면 설렁탕은 서민의 음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 밖에서 놀다 시장해져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가면 어머니가 당황하지 않고 설렁탕국물을 사다가 찬밥을 말아 대접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호암 문일평도 “…엄동설한에 뽀얀 설렁탕 육즙을 5전이면 넉넉히 사 먹을 수 있으니, 이것은 양식 스프에 비해 자양은 훨씬 앞서고 그 가격이 저렴한 것이 아닌가. 조선인은 이렇게 훌륭한 평민적 요리를 가지고도 이것을 개량, 확장하여 크게 진출할 방침을 세우지 못하는가.”며 설렁탕을 예찬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