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학술 집회였던 아호지회
- 최초 등록일
- 2008.07.05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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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차 아호논쟁
목차
1. 머리말
2. 아호사의 모임
3. 맺음말
본문내용
서원은 성리학자들이 강론을 한 곳으로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서원의 스승이 강학하거나 다른 서원의 저명한 학자들을 초청하여 강학을 했다. 이러한 교육활동이 발전되어 가면서 서원에서 주최하는 하나의 지역성적인 학술집회로 되면서 서원이 그 지역의 학술중심으로 되어갔다. 강회는 본 서원의 큰 스승이 주강하거나 기타 학파의 학자들도 참가한 가운데서 또한 다른 학파의 큰 스승들을 초청하여 주강할 수 있다. 주강자가 강의 한 후에 듣는 사람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으며 부동한 의견을 발표한 후 쌍방이 변론을 전개한다. 즉 오늘날 학술대회와 다름없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학술 집회로 ‘鵝湖之會’를 빼놓을 수 없다. 淳熙 2년에 강서성 信州의 鵝湖寺에서 공개적인 논변을 진행했는데 바로 ‘아호지회’라는 유명한 강회였다. 이때 모인 유명인사들로는 朱子, 陸九齡, 陸九淵, 劉淸之 등이 있었는데 주자와 육씨 형제간에 쟁론이 벌어졌다. 주자는 ‘독서는 먼저 박람을 한 뒤에 요약을 하여야 한다(先泛觀博覽 而後歸之約)’고 주장한 데 반하여, 육씨 형제는 ‘먼저 본심을 밝히고 난 다음에 박람하여야 한다(先發明本心 然後使之博覽)’고 하면서 주자의 교육방법이 지리(支離)하다고 하였다.
현재와 같이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고 영토가 넓은 중국에서 학술 집회가 열였다고 하니 어떠한 집회였는지 사뭇 궁금하다. 이에 본고에서는 대표적인 학술 집회인 아호지회에 대해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어떠한 학술 집회였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박경환 - 주희와 육구연의 아호논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