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야마 부시코영화 감상 -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로 논하기
- 최초 등록일
- 2008.06.27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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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에는 중간 중간, 동물들이 교미하는 장면, 개구리가 뱀에게 잡아 먹히는 장면과 같이 가장 기본적인 성욕과 가장 자연 환경에 들어맞는 약육강식의 상징을 보여 준다. 인간도 가장 간단하고, 본질적인 식욕, 성욕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앞에서 동물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야생동물과 같이 살아가야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생태 환경이기에 동물과 비슷한 모습을 지닐 수밖에 없다. 야생에서는 야생동물처럼, 문명사회에서는 교양을 지닌 인간처럼, 정보사회에서는 정보처리 능력이 지닌 사람이 되어서 살아야 한다. 인간이 환경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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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일본어를 배워 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 영화의 제목에 관심이 갔다. 나라야마 부시코. 도대체 무슨 뜻일까? 그래서 바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기로 하였다. 영화의 원 제목은 〈나라야마 부시코, 楢山節考(유산절고)〉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라야마라는 말이 지명(地名)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았기에, 부시코라는 말에 주의를 해보았다. 사전적 의미로, 절(節)은 음악의 곡조이고, 고(考)는 죽은 아버지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뜻을 찾다 보니 이 영화의 제목을 풀어 놓은 것도 찾게 되었다. 그 것은 “나라야마[楢山]는 산 이름이고, 부시코[節考]는 노래라는 뜻이다” 였다. 이와 같이, 사전적 의미와 해석적 의미를 결합하여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을 〈나라야마 산에서 죽은 아버지를 노래하다〉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렇게 영화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되니 ‘죽은 아버지를 노래하다’는 문구에 눈이 멈추었다. 그리곤 바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할머니를 나라야마 산에 버리고 온 아버지 다츠헤이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고, 아들인 케사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그 노랫말은 대충 ‘할머니는 눈이 올 때, 나라야마를 가서 운이 좋다.’ 라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어미를 죽음의 땅으로 내몰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돌아와 접하는 것은 질책이 아닌, ‘할머니는 눈이 올 때, 죽게 되어서 운이 좋다’는 아들의 노래와 어머니의 옷을 입고 있는 부인과 새로 들어온 며느리를 보는 것이다. 아무 일도 없는 듯 어미를 버리고 온 다츠헤이에게 가족들은 책망도, 질타도 하지 않는다. 다들 자기 할일에만 빠져 있었다. 어제까지도 함께 먹고, 함께 자던 ‘가족’이었지만, 자신들이 살아가는 법칙에 의해 오늘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닌 것이다. 그런 법칙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왜 그렇게 나라야마 산으로 70세가 되면 부모를 갖다 버렸을까? 200~300년 전의 일본인들의 수명은 30세 전후라고 한다. http://poor.rikoukei.com/ - 일본의 시대별 수명
경제 생활을 할 수 있는 나이를 훌쩍 넘긴, 어쩌면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태반일 70세 이후의 노인은 아마도 그 시대를 사는 이에게는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느껴질 존재일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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