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의 기본 성격(논문 요약)
- 최초 등록일
- 2008.05.19
- 최종 저작일
- 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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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 시민강좌 40에 실린 한국사 쟁점 주제 중에 동학농민운동과 관련한 내용이 있어서 레포트를 준비하였습니다. 동학사를 1차 사료를 보느냐 2차 사료로 보느냐에 따라서 역사 서술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논문이라고 판단되어 레포트 주제로 선정하였습니다.
사료 비판 능력이 부족한 저로서는 평가보다는 요약에 중점을 두어 과제를 준비하였습니다.
목차
1. 머리말
2.『역사소설 동학사』에 실린 ‘개혁조건 12조’의 허구성
3. 전봉준의 보수적 성향
4. 동학농민군의 요구사항
5. 동학농민군의 흥선대원군 추대
6.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1894년의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전라도에서 일어났던 동학농민봉기는 참가 인원의 규모와 운동의 격렬성 면에서 전통시대 민란의 최고봉을 장식하였다. 이 운동은 비록 10개월 만에 실패로 끝났지만 단기적으로는 갑오경장과 청일전쟁의 기폭제가 되고 장기적으로 한국현대의 각종개혁(혁명운동과 항일운동)의 정신적 고무제가 됨으로써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이 민중운동은 해방 전까지는 ‘東學亂’, ‘東匪의 亂’ 혹은 ‘東學革命’ 등으로 불렸으나, 1940년대 후반부터는 ‘동학(농민)혁명’ 혹은 ‘갑오농민전쟁’이라고 고쳐 불리는 추세이다. 이 우동을 ‘혁명’이라고 지칭하는 학자들은 이를 근대적 국민국가 건설을 지향한 反외세 민족주의 내지 反봉건 평등주의 민중운동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농민전쟁’이라고 부르는 학자들은 이를 일종의 계급전쟁으로 간주한다.
‘동학혁명’ 내지 ‘농민전쟁’론자들은 다같이 이 운동을 16세기 초 독일에서 뮌처(Tomas Muntzer, 1490년경~1525)가 주도한 ‘독일농민전쟁’이나 19세기 중엽 중국에서 洪秀全(1814~1864)이 일으킨 ‘太平天國의 亂’에 비견하면서 조선민중이 자유, 평등, 민권 등 근대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일으킨 진보적인 사회혁명이었다고 본다. 따라서 그들은 이 운동을 현대 한국의 민주주의, 사회주의-공산주의 및 민중주의의 원류로 간주하면서 그 역사적 의의를 높이 평가한다.
1894년의 농민봉기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 자리매김은 오늘날 남․북한 학계에 공통적인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 민중운동을 ‘동학혁명’ 혹은 ‘농민전쟁’으로 간주하는 학자들은 과연 어떠한 근거에서 이와 같은 주장을 펴는 것일까? ‘동학혁명론자’들은 이 운동이 우리나라 고유의 민중종교인 東學/天道敎에서 강조하는 輔國安民(반외세․애민), 人乃天(평등), 後天開闢(사회혁명) 등 일련의 혁신적 宗旨에 바탕한 민중운동이기 때문에 혁명적이었다고 본다.
다른 한편, ‘농민전쟁’론자들은 이 운동이야말로 한국 역사상 끊임없이 되풀이된 지배계급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투쟁이 조선후기에 이르러 한층 고조, 격화되면서 역사발전 법칙상 불가피하게 일어났던 계급전쟁이었다고 본다
참고 자료
- 유영익, 「동학농민운동의 기본 성격」,『한국사 시민강좌』40, 일조각,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