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수레
- 최초 등록일
- 2008.05.11
- 최종 저작일
- 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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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구려에서 어떻게 수레를 활용했는지에 대한 간단한 소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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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고구려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고구려만큼 민족의 영토를 크게 개척한 나라도 드물었고, 스스로를 천하의 중심이라 선포하였으며, 대제국 수와 당에 맞서 그들의 침략을 격퇴시켜 고구려의 위상을 드높였으니 말이다.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이었다. 고구려가 강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고구려 힘의 근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필자는 바로 수레가 아닌가 한다. 수레를 통해 먼 지방의 물산이 교역되고, 수레의 활용으로 도로가 개통되어 상업이 발달되고, 상업의 발달은 나라의 국부를 크게 향상시켰다.
고구려가 강력한 군단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도, 고구려가 스스로를 천하의 중심이라 선포할 수 있었던 것도, 고구려가 중국에 결코 뒤지지 않는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수레의 활용 때문이 아닌가 싶다.
수레의 발명으로 인간은 보다 많은 물건을 적은 힘을 들이고도 운반할 수 있게 되었고, 소나 말 등의 짐승을 동력으로 활용하여 수레를 빠르게 움직이게 함으로써 지리상의 거리를 줄이게 되었다. 수레는 옛 사람들이 만든 과학 지식의 결실이라 할 수 있으며, 문명의 잣대로 이용될 수 있는 인간의 획기적인 발명품이라 할 수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 등은 청나라를 답사하면서, 청나라의 벽돌과 함께 수레를 배워야 한다고 강변하였다. 게다가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로의 사행길에서
"타는 수레와 싣는 수레는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어서 시급히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레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운반이 어려워서 바닷가 사람들은 지천으로 널려있는 새우와 정어리를 거름으로 밭에 내지만, 서울에서는 한 움큼에 한 푼이나 주고 사야되며, 영남지방 아이들은 새우젓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라가 가난한 것은 수레가 다니지 못한 까닭이다. 그럼에도 사대부들은 수레를 만드는 기술이나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하지 않고, 한갓 글만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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