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지눌의 불교를 보조선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
- 최초 등록일
- 2008.04.28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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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철학사 시간에 간단하게 배운 것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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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삼국시기의 불교는 교종(敎宗)이었으며, 그 흐름은 후기 신라까지 이어졌다. 교종은 부처의 말씀을 담은 경전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종파다. 그런데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리고 강력한 국가를 이룩한 신라는 후기에 이르러 왕권이 약해지고 상대적으로 지방호족들의 힘이 커지면서 나라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에 미래를 예언하는 도참사상과 풍수지리가 크게 유행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은 불교에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현실을 헛것으로 보는 불교가 오히려 현실의 복을 비는 무속적 요소와 어우러지면서 미륵신앙을 유행시키기도 하였다. 이 같은 신비주의의 유행은 논리를 강조하는 교종과 달리 단번에 모든 것을 뛰어넘어 해탈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하는 선종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지눌이 있던 당시 한국의 선불교는 화엄학의 복잡하고 현학적인 분석과 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철학적 기초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런 철학적 기초를 개발하는데 있어 지눌은 두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한국 선불교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선 그는 화엄학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무염의 주장을 평가절하했으며 둘째로 그는 스승으로부터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전법보다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불법을 강조하였다.
불교 수행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선이라고 주장하면서 지눌은 화엄학을 선불교 수행의 이론적 근거로 삼았다. 이와 같이 선과 화엄을 성공적으로 회통합으로써 한국 토착 선종인 조계종 형성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지눌의 노력으로 한국 선불교는 독특한 수행법과 독특한 불교 양식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눌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처란 바로 내 마음이며 따라서 자신이 곧 부처임을 깨닫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완전한 모습으로서의 불성이 들어 있어서 이것을 깨닫는 일이 모든 수행의 출발이라고 보았다. 깨달음의 첫 단계는 ‘돈오(頓悟)’이고 둘째 단계는 ‘점수(漸修)’이다. ‘돈오’는 자기 안에 부처의 본모습이 들어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 것이며 ‘점수’는 자신이 바로 부처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더라도 타성에 젖어 끊임없이 일어나는 욕망을 가라앉히기 위해 계속해서 마음을 닦는 것을 말한다. 지눌에 의하면 깨달음에는 해오와 증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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