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학사] 단군릉의 실체
- 최초 등록일
- 2008.01.16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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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학사 중에서 쟁점이 되는 단군릉 사건을 하나하나씩 파헤쳐본 레포트입니다.
흥미있는 이슈를 택해 차분히 썼으니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목차
◈ 여는 마당
◈ 본 마당
1. 단군릉 사건 이전의 고조선 연구
1) 해방 ~ 1950년대
2) 1960년대
3) 1970 ~ 1980년대
2. 단군릉의 발견
1) 단군릉 사건의 실재
2) 단군릉 주장의 근거
3) 단군릉 주장의 허구성
3. 단군릉 사건의 결과와 의미
1) 단군릉 사건의 결과
2) 대동강 문화론과 우리민족 제일주의
◈ 맺음 마당
본문내용
◈ 여는 마당
한국사학사의 과제의 주제를 두고 고민하던 나는 ‘북한의 역사학 중 시대구분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세히 배우지는 않았지만 1학년 때 ‘한국사 개설’ 수업에서 북한의 시대 구분론은 우리의 그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과 관련한, 특히 시대 구분론과 관련된 자료를 모았다. 그러다가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과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단군릉’ 사건이다. 나는 지금까지 단군과 단군신화는 말 그대로 그저 전설일 뿐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실제로 ‘단군릉’이 있다니 놀랍고 신기했다.
그래서 북한의 역사학 중 ‘단군릉’ 사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군릉 사건 이전의 고조선에 대한 시각 변화를 살펴보아 단군릉 사건이 일어난 배경을 알아보고, 그런 다음에 북한이 주장한 단군릉 사건의 실재와 그 근거를 꼼꼼히 따져 과연 그 근거들이 타탕한지를 살펴볼 것이다. 또한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러한지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단군릉 사건으로 인해 나타난 결과와 그 사건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겠다.
◈ 본 마당
1. ‘단군릉’ 사건 이전의 고조선 연구
‘단군릉’ 사건이 일어나기 전, 북한에서 나타나는 고조선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자.
1) 해방 ~ 1950년대
이 시기는 ‘고조선 연구의 모색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주요 쟁점은 ‘삼국시기의 사회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었고, 이것은 크게 고대 노예제 사회와 중세 봉건제 사회로 보는 두 견해로 나뉘어졌다. 이에 따라 고조선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드물었지만, 그 과정에서 고조선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2) 1960년대
이 시기는 ‘고조선 연구의 개화기인 동시에 절정기’에 해당한다. 이미 삼국시기의 사회 성격이 중세 봉건제 사회로, 이보다 앞선 고조선 사회가 고대 노예제 사회라는 결론이 내려졌으므로 주요 쟁점은 ‘단군신화에 대한 이해와 고조선의 위치 문제’였다.
참고 자료
『단군과 단군 조선』, 이형구, 1995, 살림터
『하나의 역사』, 두개의 역사학, 정두희, 2001, 소나무
『북한 역사학 50년』, 한국 역사연구회 북한사학사 연구반, 2003, 푸른 역사
『한국사 시민 강좌』, 이기백, 1997, 일조각
『북한이 보는 우리 역사』, 김정배, 1989, 을유문화사
『남북한 국사 교육 비교 연구』, 이건, 1999, 강원대학교 교육대학원
『북한 사회주의 체재 유지를 위한 민족주의 기능에 관한 연구』,남내원, 2000, 서울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