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언로(언론)에 대한 요약조사
- 최초 등록일
- 2007.12.17
- 최종 저작일
- 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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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의 언로인 대간(사헌부,사간원), 홍문관, 신문고, 상소제도, 민중의 언로 대한 요약 설명과 통합적 설명.
목차
대간
상소제도
민중의 언로
본문내용
조선시대의 언론자유라는 표현이 언로(言路)인데 자주 냇물과 비교되었다. 냇물이 막히면 썩는다는 뜻인데, 조선왕조실록에 ‘언로’라는 말이 무려 4712건이나 등장한다. “언로가 통하면 국가가 편안하고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는 표현이 자주 보일 정도로 언론자유는 조선 개국이념의 하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이덕일(역사평론가)
조선시대의 언론제도로는 조정 공론을 위해 시사, 경연의 자리에서 토의와 건의 형식을 통한 구두의 언로와 상소, 차자와 같은 문자의 언로 그리고 복합과 복궐과 같은 시위 형식을 통한 언로 등의 통로가 있었다.
중앙집권적 전제 군주국가였던 조선이 5백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권력분점에 의한 군주의 전제횡포를 막아내고 권력의 배분을 통해 서로 견제하면서 합리적인 정치운영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선시대의 권력은 삼공(영의정, 좌의정, 우의정)과 대간(사헌부, 사간원), 옥당(홍문관의 당상관), 시종이 서로 권력의 독점을 비판하면서 유교적인 이념의 이상국가 건설을 위해 분투했다. 그 과정에서 공론에 바탕을 둔 민본ㆍ문민정치를 구현함에 있어서 언론은 필수적이었다.
조선조 언론의 주체는 정부의 공식기구로서 제도화된 조직이었고 주로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나 소집단 커뮤니케이션의 퍼스널 커뮤니케이션적인 성격을 가졌다. 그리고 제한된 영역의 특정 수용자가 커뮤니케이션의 목표가 되었다. 또한 언론의 내용도 다분히 목적성이 강하기 때문에 규범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내용을 반영했으며, 커뮤니케이션 효과에 있어서도 수용자가 한정되어 있어 확산성은 약한 반면 효과의 강도는 매우 높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조선조의 언론은 제도권 언론과 비제도권 언론으로 구분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조선시대의 언론문화, 김세철 등 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