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생애
- 최초 등록일
- 2007.11.23
- 최종 저작일
- 2007.03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서정주의 생애 조사 리포트
목차
ⅰ . 서정주의 양력 및 전기
(1) 출생 및 유년시절
(2) 소년 시절
(3) 일제시대와 친일 행위
(4) 해방 이후 활동
(5) 사망
ⅱ. 미당 서정주의 시세계
ⅲ . 시 분석 및 감상
ⅳ . 평가
ⅴ .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출생 및 유년 시절
서정주는 1915년 5월 18일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속칭 질마재)에서 출생하였다. 질마재의 ‘질마’는 마을을 넘어서는 고개의 모양이 길마(수레를 끌때 말이나 소 드에 안장같이 얹는 제구)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질마’는 ‘갈마’가 구개음화 안 된 상태의 명칭이다. 호는 미당이며. 아호는 궁발이다. 그의 아버지는 서광한으로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으나 미당 할아버지의 노름벽 때문에 가산이 탕진되어 먹고살기 위해 질마재에 들어와 삶의 터전을 잡았다. 서광한은 그 후 가적을 놔두고 서울로 올라와 측량학을 공부하다가, 다시 고향에 내려와 고창 군청 측량기수가 되었다. 이때 호남 댖주인 동복 김기중 영감을 알게 되었다. 김기중은 동아일보를 키운 인촌 김성수의 부친으로, 동복이란 명칭은 동복 고을 현감을 지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듯 질마재 마을에 실제로 행해지는 풍습니아 니야기로 전해 내려오는 전설 등은 어린 미당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훗날 그로 하여금「질마재 신화」를 쓰게끔 만들었다.
(2) 소년 시절
미당은 아홉 살 때 질마재를 떠나 줄포란 곳에 이사를 가게 되었다. 까닭은 아버지가 농감일을 해 온 동복 영감의 일가가 서울로 ld사를 하게 되어 그 대갓집의 문지기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동복 영감집은 이름난 대갓집이라 안차까지 들어가려면 대문․중문 등 여러문을 거쳐야 하고, 방 칸 수만 해도 예순 칸이나 되는 대가고루였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줄포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6년과정을 5년에 수료했다. 그는 곳 1929년에 그 아버지의 소원대로 인촌 김성수선생이 설립한 계동의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1930년 11월 광주학생사건 때 4인의 주모자 중의 하나가 되어 학교를 퇴학당했으며, 이듬해 봄에 고향인 고창에 있는 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학해서도 역시 주모자가 되어 자퇴를해야했다. 물질적 균배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톨스토이의 책을 읽은 후였다. “물질적 균배로서 인생의 행복을 두루 좌우하다니 그 무슨 엉터리 소리냐”는 구절을 읽고 넓다면 한정 없이 넓고, 깊다면 또 한정 없이 깊은 인생의 실제의 운영 속에서 경제적인 균배만으로 그 해결책을 삼는 사회주의의 좁은 철학에 회의가 들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박호영,「서정주」,건국대학교 출판부, 2003. 7.
김학동외, 「서정주연구」,새문사, 2005. 5.
월간 현대시. 한국의 시인들1<혼의 시인 서정주>, 시네텔 서울.2001
http://blog.naver.com/khss1529?Redirect=Log&logNo=140012020056
ht김동리, 시집『귀촉도』발사,선문사,1946tp://
www.cbkh.com.ne.kr/poem/%C3%DF%C3%B5%BB%E7%20-%BC%AD%C1%A4%C1%D6.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