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건축가
- 최초 등록일
- 2007.11.22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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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인 건축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A+ 자료입니다,^^ 후회 안하실 것입니다.
목차
서론
조선인 건축가
-박인준
-박길룡
-강윤
-박동진
-김순하
-정인국
-박학재
-이광노
본문내용
최근 한국 근현대 건축과 조선인 건축가에 대해 조사하면서 이때까지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 건축의 뿌리와 건축 작품, 건축가들을 접하게 되었고, 내가 지금 살고 있으며 공부하고 있는 이곳이 선배들의 노력과 발판을 마련하는 작업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느끼며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게 되었다. 몇 몇 선배님들에 대한 알고 그것이 다 인 것으로만 알던 나에게 이번 조사를 통하여 당연히 알아야하는 부분에 대한 밀린 공부를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으로 조사를 정리하고자 한다.
건축은 거기에 관련된 여러 요인, 즉 사회·경제·정치·문화 등이 합성된 요인의 복합적인 결과로서 시대에 따른 형태와 양식으로써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서구이식 문화의 식민지적 재이식은 광화문 철거 등에서 보듯이 우리의 정통적 건축문화를 말살하려는 것이었다. 일본이 한국을 강점했던 1910∼45년 사이의 한국에서의 건축활동은 일본의 건축문화의 연장으로서, 일본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던 서구문화가 그대로 이식되던 시기였다. 이것은 우리의 근대건축이 형성될 시기였으므로, 우리의 진실한 건축적 기반이 조성되는 것을 방해하였으며, 나아가서는 8·15광복 후 다른 나라와 보조를 같이 하여 현대건축의 길을 여는 것을 막았다. 이 당시(1920∼30)는 일본의 건축계가 절충주의와 전위적인 서구건축의 시세션(secession) 유파의 건축이 횡행하던 시기이다. 이 당시의 일본 건축계의 사정이 바로 우리 건축계의 현실이었다. 이렇게 한국의 근대 건축은 일본인 또는 외국인의 손을 빌려서 일본인에 의하여 서구건축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당시의 대표적 건물로는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1912년 준공)·구 조선호텔(1914)·경성우체국(구 중앙우체국, 1915년 준공)·서울역(1925) 등이 있으며, 이들은 르네상스 건축의 아류(亞流), 또는 절충주의 건축으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양식적 표현이 전혀 보이지 않는 합리주의적 건축의 최초 시도는 1927년 건립된 남대문 옆 구경성상공장려관(대한무역진흥공사 구사옥)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