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체제의 형성과 붕괴...그리고 결과
- 최초 등록일
- 2007.11.02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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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빈회의를 비롯한 수많은 회의와 명언을 남겼던.......
유럽역사를 약 30여년정도 늦춘..빈체제.
그 빈체제에 대하여 형성과정과 붕괴위기. 결과..이렇게 소개하겠습니다.
목차
들어가며...
▣ 빈 체제 이전의 시대상황
◉ 나폴레옹의 두각
◉ 제2차 대불동맹
◉ 제 3 차 대불동맹(1805년)
◉대륙봉쇄령과 스페인
◉ 러시아침공과 나폴레옹의 몰락 (1812~1814)
▣ 빈 체제의 성립
◉ 제 1 차 파리조약
◉ 빈 회의
◉ 빈 회의의 원칙
(1) 정통주의(Principle of Legitimacy)
(2) 세력균형 원칙(Priciple of Balance of Power)
(3) 보상주의(Principle of Compensations)
(4) 자유주의와 혁명사상의 탄압
◉ 제 2 차 파리조약
▣ 빈 체제와 유럽협조 체제
◉신성동맹
◉4국동맹
▣빈체제의 유지
◉ 5국동맹
◉ 트로파우회의(Congress of Troppau)
◉ 베로나 회의
▣ 빈 체제의 위기와 붕괴
◉ 남아메리카문제
① 강대국의 입장
② 미국의 먼로선언
◉ 지중해문제(=동부문제=발칸문제=근동문제)
◉ 1830년 프랑스 7월 혁명
◉ 벨기에문제
◉ 폴란드문제
◉ 오스만 투르크문제
② 경과
③ 각국의 반응과 새로운 위기
◉1848년 2월 혁명과 그 여파
1. 프랑스
◉ 오스트리아
중략..
본문내용
들어가며...
1814~15년에 걸쳐 빈회의를 중심으로 성립한 빈체제는 프랑스혁명 이래의 유럽 전쟁 처리에 관한 국제정치체제로서 그 골격을 이룬 것은 1814년 쇼몽조약에서 성립한 영국·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의 4국동맹, 15년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의 3군주(君主)가 체결한 신성동맹 등이었다. 이는 혁명에 반대하고, 군주제를 유지하여 강대국의 협조를 도모하는 복고적 성격의 것이었다. 빈회의는 프랑스혁명 직전의 군주의 지배를 정당하다고 보는 정당주의와 대국간의 세력균형의 원칙에 의하여 유럽의 영토관계를 구획하고 구지배자를 부활시켰다. 보수적·복고적인 이 체제는 독일·이탈리아를 분열상태로 머물게 하고, 여러 소국의 이해에 대한 고려가 적을뿐더러 각국의 자유주의·민족주의 운동을 억압하는 체제였다. 특히 유럽에 있어서 1789년의 혁명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때부터 비로소 자유와 평등이 정치적으로 실현 되었을 뿐 아니라, 혁명이 압제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 방법이라는 것이 또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 뒤를 이은 나폴레옹 시대 역시 많은 의미를 갖는데 그 중 하나는 프랑스 혁명 이념이 대외적으로 널리 유럽각지에 전파되어, 그 결과 혁명운동은 프랑스에 국한된 것이기 보다는 차라리 전 유럽에 걸친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나폴레옹이 몰락했을 때, 유럽을 재조정할 유럽의 대표들은 1789년 이전의 구체제로 복고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한 희망에 부응하여 형성된 것이 빈 체제이다. 아래에서는 빈 체제의 출발점인 빈회의에서 시작해서 빈 체제가 유지되는 원칙과 그 유지 양상을 살펴본 후, 빈 체제가 동요되는 현상을 살펴보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