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 니콜오렘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7.10.29
- 최종 저작일
- 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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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수학자에대한 심층있는 레포트
목차
수학자로서의 니콜오렘
프랑스어 문체 발전(아리스토텔레스주의 학자)
과학자(지동설의 선구자)
경제학자
본문내용
중세 유럽은 13세기 중반쯤부터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영국의 내란인 장미전쟁이라는 긴 전란이 계속되었고, 이로 인한 유행병이 만연하여 문화적으로는 거의 발전이 없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수학자로서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은 프랑스의 성직자 니콜 오렘이다. 그는 현대 수학, 과학과 프랑스어 문체, 특히 과학 어휘가 발전하는 데 기초를 마련했다. 파리에서 신학을 연구했고 1348~56년 파리대학교 콜레주 드 나바르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한 뒤 개인지도교사로 일하다 1361년 사임했다. 프랑스 루앙의 참사회원(1362)과 참사회장(1364)을 지냈는데, 1363년 크리스마스 전야에는 교황 우르바누스 5세 앞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다. 그 뒤 프랑스 로마 가톨릭 주교직을 수행한 뒤인 1382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 수학자로서의 오렘 ☻
오렘은 그의 논문 중 한 곳에서, 작은 변화만이 허락된 독립변수에 대응하는 종속변수를 그래프로 나타냄으로써 어떤 법칙들을 제시했을 때, 해석 기하학의 또 다른 면을 예감했다. 해석 기하학의 발견자로서 오렘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의 논문들에서 직선에 대한 방정식의 최초의 명확한 도입과 이차원 공간에서 삼차원으로 그리고 사차원 공간으로 확장하는 것에 대한 일분 개념들의 최초의 도입과 같은 그의 업적으로 꼽는다.
그는 지수의 개념과 그 기호를 비롯하여 유리수라든지 음의 지수까지도 고안해 냈다. 오렘은 함수의 변화 상태를 그래프로 나타내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물론 그때는 아직 `함수`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대였지만. 특히 `무한`을 수학 안에 끌어들이는 것을 거부했던 그리스 시대와는 달리 오렘은 무한급수를 연구함으로써 `무한`을 수학 의 대상으로 삼았다. 무한이 이처럼 수학에서 적극적인 인식의 대상이 된 것은 무한을 신의 속성으로 간주하는 기독교의 영향 때문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