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라파예트 이야기
- 최초 등록일
- 2007.10.29
- 최종 저작일
- 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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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프랑스 혁명 -라파예트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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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7세기에 ‘대왕’루이 14세는 “짐은 곧 국가다”라고 했고, 18세기 그의 후계자 루이 15세는 “짐이 죽은 뒤에야 대홍수가 오건 말건 내 알바 아니다”라 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가 초대한 대로 대홍수가 일어나 버렸다.
향수뿌린 가발과 반바지(culotte)를 입은 귀족 대신 ‘상퀼로트(sanscnlottes)를 입은 평민들이 등장하여 프랑스인은 모두 ’시타와이엥 citoyes혹은 ‘시트와이엔느 citoyenee(남녀시민)’이 되었다. -
부족한 것이라곤 없었다. 대영주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로써는 지금의 복잡한 상황들은 단순 위기 상황이라고만 생각했다. 미국 독립전쟁에 프랑스 국기를 들고 참여했을때에도 이 승리는 당연히 프랑스의 몫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은 군인의 임무로 행할 수 있는 임무를 다하면 되는 것이였다. 전쟁을 치루면서 워싱턴의 신임을 얻어 전쟁터에서도 승승장구하여 지지세력이 팽창되더라도(실제 그는 그러했다) , 독립을 위해 싸운다는 저들의 생각또한 (사실 그들은 처음부터 독립이 목적은 아니였지 않은가?) 얄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프랑스의 개입또한 독립을 위한 독립전쟁이 아닌 몇백년간의 앙숙인 영국하고의 처절한 전투에 지나지 않았다.
요크타운 전투에서 프랑스함대와 프랑스 군인이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전쟁에 임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한 모든 프랑스 군인들 그리고 위의 선조들이 그러하였듯이 자신도 전쟁의 승리를 가져오면 조국을 위해 나의 몫은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782년 전쟁에서 승리하여 개선문으로 당당히 개선장군으로 들어온 그로써는 프랑스를 위한 자신의 몫을 다했으므로 국왕옆자리에서 왕좌를 보좌하며 국정을 이끌면 되는 것이였다.
25의 어린 나이에 국왕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독립전쟁때의 워싱턴과의 신임으로 인하여 프랑스와 미국과의 외교는 자신이 거의 도맡아 할만큼, 누구도 자신에 대해서 모욕할 수 없는 위치에 자신이 평소 경멸하던 귀족역시 자신의 앞에서는 단 한마디도 욕할수 없지 않은가?..
그는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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