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과 이승만 정부, 자유당과 이승만 정부, 5.16과 박정희 정부, 10월 유신, 10.26과 전두환 정부, 6월항쟁과 노태우 정부
- 최초 등록일
- 2007.10.26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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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까지의 한국정치 과정을 소개합니다.
목차
1. 자유당과 이승만 정부
2. 4월혁명과 장면 정부
- 민주당의 신파와 구파
- 혁신계 정당
- 516 군사정변에 대한 생각
3. 5.16과 박정희 정부, 10월 유신
4. 10.26과 전두환 정부
5. 6월항쟁과 노태우 정부
본문내용
1. 자유당과 이승만 정부
의원들은 내각제 헌법을 선호하였지만 이승만은 대통령제를 주장했다. 당시의 한민당은 이승만과 긴밀하여서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 내각제를 가미한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이때의 내각제와 대통령제가 혼합된 구조가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이후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고 한민당의 힘이 커져 자신을 위협할 것을 염려하여 이승만은 한민당을 배제시키기에 이른다. 배신감을 느낀 한민당은 내각제 개헌안을 제출하게 된다. 이승만 또한 한국전쟁 중에 직선제 개헌안을 제출하게 되고 이리하여 이중 개헌안이 제출된 것이다. 그 결과 양자를 발췌해 개헌한 발췌개헌이 만들어졌다.
이승만은 자신을 지지하는 여당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자유당을 창당하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연임 금지 조항을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는 허용해주자는 개헌안을 통과시키고자 하였다. 136명이 찬성을 해야 통과되는 상황에서 135.333...의 표가 나와 사회자는 부결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음 본회의 때 사사오입에 의해 가결되었다고 발표하여 이승만을 연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러한 무리한 개헌으로 자유당에서 빠져나온(탈당) 사람과 무소속, 민주당이 연합해 호원동지회를 만들어 통합 야당을 만들고자 하였다. 과거의 공산당 활동을 했던 조봉암이 호・동에 가입하고자 해서 자유민주파와 민주대동파로 나뉘어져 대립하게 되었다. 자유민주파는 사상이 불순하거나 좌익 활동, 공산당 활동을 한 사람 등은 제외시키자고 주장한 반면, 민주대동파는 예전의 경험은 모두 배제하고 현재는 같은 나라의 국민이니 같이 하자고 주장하였다. 이후 자유민주파는 민주당으로 명칭을 바꾸어 대통령 후보를 신익희, 부통령 후보를 장면으로 내세웠다. 반면 민주대동파에서는 조봉암이 대표로 나왔다. 야당은 둘로 나누어져 있으면 이승만을 이길 수 없으므로 후보단일화를 하자고 하였지만 부통령 후보의 자리를 놓고 대립이 계속 되었다. 선거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신익희가 선거를 불과 열흘 앞두고 갑자기 사망하는 돌발 상황 속에서 치러졌다. 신익희의 사망으로 조봉암은 약 30%의 지지를 얻었으나 엄청난 부정개표로 인해 이승만이 당선되었다. 이에 조봉암은 ꡒ투표에는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ꡓ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4년 후 자유당에서 이승만과 이기붕이, 민주당에서는 조병옥과 장면이 후보로 나왔으니 민주당의 경우 신・구파의 대립이 심하였다. 이후 조병옥이 선거를 앞두고 사망하였고 자유당은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에서 무리한 수법을 썼고 부정선거가 자행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