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로회 한국 선교의 성립과 전개
- 최초 등록일
- 2007.10.08
- 최종 저작일
- 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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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국 장로교 선교회가 한국에 선교를 시작하고 전개해 나가는 과정을 정리한 글입니다.
목차
1 미국 장로회의 한국 선교 시작
1) 한미조약체결과 선교사의 입국
2)초기선교사들의 한국정착과 선교활동
2 미국 장로회의 한국 선교의 전개
1)서울 선교부의 설립과 지역 거점의 확보
2)미국 장로회 한국 선교부의 발전
본문내용
일본의 침략적 팽창주의가 점차 구체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이홍장의 균세지국(balance of power)적인 대한전략이 황준헌의『조선책략』이라는 소책자로 찬술되어 조선은 ‘親中國’, ‘結日本’, ‘聯美國’을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국제정세에 대한 한국의 전략은 김홍집과 조선정부에 영향을 주어 1882년 5월에 미국 전권대사 슈펠트(R. W. Shufeldt)와 한국 전권 신헌과 김홍집은 한미수호통상조약을 맺게 되었고 1883년 5월에 초대 미국공사로서 푸트(L. H. Foote)가 부임하였다.
전문 14조로 된 한미수호통상조약은 조선의 미곡수출을 금지하는 조항을 첨가한 것 이외에는 전문 초안대로 조인되었다. 당시 미국은 약 30년전 일본을 개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선을 무역의 대상국으로 보다는 중국무역에 종사하는 자국 선박과 선원들을 위하여 기항지와 해난 시 피난처와 구조를 확보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조선의 요구에 쉽게 응하였다. 김기혁, 한국사시민강좌 제7집-개항을 둘러싼 국제정치, 1990, 일조각, 32쪽 참조
그러나 이 조문에서는 선교의 자유를 보장한 조항은 없었고 ‘학자’를 파견하여 “언어와 문학과 예술을 연구할 수 있는” 권한은 주어졌다고 볼 수 있었다.
이후 한국은 1883년 7월 민영익, 홍영식을 위시한 견미사절단을 파견하여 미국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얻음과 동시에 세계에 한국이 완전한 독립국임을 보여주려 하였다. 이 과정에 사절단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카고에 이르는 기차에서 한국선교에 많은 공헌을 한 감리교목사인 가우쳐(J. F. Goucher)박사를 만나게 되어 한국에 대한 소개를 하였다. 이와 동시에 이미 중국과 일본에 파견되어 활동중인 미국 선교사들은 선교본부에 한국선교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의료’와 ‘교육’사업이 전망 있음을 밝혔고 특히 일본에서 기독교인이 되어 성서번역 중이던 이수정은 한국선교를 요청하는 글을 선교잡지(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에 기고하여 미국교회들에게 호소하기도 하였다. 백낙준, 한국개신교사, 1973, 연세대학교출판부, 79쪽
이 호소문은 미국의 장로교회에 자극을 주어 뉴욕시 부르클린에 있는 라피엣 교회(Lafayette Presbyterian Church)교인이며 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부 위원 중의 한 사람인 맥윌리엄스(D. W. McWilliams)가 한국 선교를 위해 5,000달러를 기부하였으며 윤경로, 새문안교회100년사, 1995, 서울 새문안교회, 61쪽 참조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