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국공합작
- 최초 등록일
- 2007.09.13
- 최종 저작일
- 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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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20년대 중국의 제1차 국공합작에 대한 발표문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국공합작의 배경
(1) 대외적 상황
(2) 대내적 상황
3. 국공합작의 형성과정
(1) 코민테른의 영향
(2) 손문의 ‘3대정책’
(3) 중국공산당
4. 국공합작의 체제와 국민혁명의 확산
(1) 국공합작의 체제
(2) 국민혁명의 확산
5. 나오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1920년대의 중국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군벌통치의 암흑과 혼란을 극복하고,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주독립의 부강한 신중국을 건설해야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과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 이어지면서 중국의 반식민지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으며, 각종 이권을 침탈당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반면 내부적으로는 당시의 어두운 상황을 극복하고 신중국을 건설하려는 국민적 자각과 열망이 그만큼 더욱 확산되어 국민혁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군벌과 제국주의 세력의 침탈에 확산된 반군벌 반제 운동의 분위기는 이들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이 실현되면서, 국민혁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제1차 국공합작(이하 국공합작)은 신해혁명 이래 극히 혼란스럽던 정치국면에 전환점을 마련하여 혁명에 새로운 물꼬를 텄다. 하지만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의 합작을 지칭하는 국공합작이 양당의 당내 의지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견해는 거의 없다. 합작의 두 실체를 손문(孫文)과 코민테른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본문에서는 국공합작의 배경과 형성과정 및 성립 이후의 체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2. 국공합작의 배경
(1) 대외적 상황
1921년 11월부터 1922년 2월에 걸쳐서 개최된 워싱턴 회의는 제1차 대전 중에 동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에서 생긴 열강 간의 세력 관계의 변화에 대응하여 전후의 새로운 국제 질서를 재구축하고자 한 것이었다. 중국에 대해서는 독일의 패퇴, 영․불의 후퇴에 대신하여 일본과 미국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중국의 주권존중․영토보전과 함께 ‘문호개방’의 원칙에 기초한 열강의 기회 균등을 약속한 4원칙과 9개 조약 외에 5% 이내의 부가세를 인정하는 관세 협정 및 중․일 양국의 직접 교섭에 의하여 산동성의 독일 권익에 관한 현안을 해결한다는 합의가 성립하였다. 이리하여 이후 10년에 걸친 동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국제관계의 기본적 틀로서의 워싱턴 체제가 성립하였던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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