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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흥선대원군은 쇄국론자였는가 (흥선대원군에 대한 상반된 평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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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등록일
2007.06.21
최종 저작일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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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흥선대원군에 대한 상반된 입장이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 글을 쓴 것입니다.
3명이 한 팀이 되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글을 썼구요.
인터넷에서 찾는다거나 하지 않고 다양한 책을 보면서 직접 작성한 것입니다.
최대한 다양한 근거를 들어 자신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했고요.
교수님에게도 칭찬을 많이 받은 레포트 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묻는 경우에는 레포트를 작성하기 쉽지 않은데요.
믿고 구매하셔도 좋을 거예요 ^^

목차

Ⅰ. 서론 (p.2)

Ⅱ. 본론 (p.2)

1. 당시의 배경 (p.2)
(1) 세계적 배경 (p.2)
(2) 국내적 배경 (p.3)

2. 흥선대원군은 누구인가 (p.5)
(1) 정치의 핵심으로 떠오르기까지.. (p.5)
(2) 흥선대원군의 대내정책 (p.6)

3. 흥선대원군의 대외정책 (p.7)

4. 흥선대원군은 쇄국론자였는가 (p.9)

Ⅲ. 결론 (p.11)

5. 우리의 평가 (p.11)

본문내용

Ⅰ. 서론

한미 FTA와 관련해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론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FTA를 반대하면 쇄국론자라는 말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쇄국을 거론할 때 우리는 항상 ‘개국’을 생각한다. ‘개국’은 서구문물의 도입을 통한 조선사회의 근대화를 상정하고 있다. ‘쇄국’은 폐쇄성, 전통의 묵수, 정체성, 봉건성 등을 의미하고 ‘개국’은 개방, 개혁, 혁신, 서구화, 근대화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개국’하는 순간 한국역사는 그동안의 봉건성을 탈출하면서 새롭게 ‘시작’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특히 19세기 역사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내용을 정리하다보면 우리의 사고방식이 편벽되어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즉 개화 혹은 개국지상주의에 빠져서 서구문물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것, 혹은 가까우려고 노력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역사적 배경에 상관없이 일단 높은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서구 열강이 통상을 요구하며 조선을 계속해서 압박하고 여러 가지 사건을 일으켜 조선을 혼란케 하던 그 때의 상황과 너무도 비슷하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FTA라는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해야할 중요한 결정의 단계에 와 있다. 격동의 시기, 갈림길에서 어느 것을 선택해야 옳은 것인지는 그 시기가 지난 후의 역사가 말해준다.
당시 조선에는 흥선대원군이 있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인물을 연구하는 연구자의 자료과 시대를 해석하는 눈이 각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인물을 두고 긍정적 혹은 부정적 평가를 내리게 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중적 평가가 아무리 비일비재 하더라도 흥선대원군에 대해 역대 연구자들이 내리는 평가만큼 다중적이며 양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는 대원군이 등장했던 역사적 시기가 복잡하고 그만큼 지도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흥선대원군을 재조명해 보고 과연 그가 조선의 마지막 개혁가 또는 근대화 지연의 장본인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그의 선택이 과연 진정으로 쇄국을 바란 것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짚어보고 싶다. 흥선대원군의 정책 만이 아니라 당시 조선과 세계적인 상황을 살펴보고 흥선대원군의 선택이 그의 능동적인 입장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적인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를 평가해 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학위논문>
- 연갑수, 2000, “대원군과 서양 - 대원군은 쇄국론자였는가 -”, 역사비평, 2월 봄호,
pp. 105~149 (45 pages), 역사문제연구소(역사비평사)
- 연갑수, 1997, “대원군 집권기 국방정책”,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한국문화), 한국 문화 제20집, 1997. 12, pp. 245 ~ 303 (59pages)
- 김윤곤, 2000, “흥선대원군의 행정사상 연구”, 단국대 대학원
- 변진석, 2000, “흥선대원군 정권의 성격”, 한양대 교육대학원
- 최경자, 1986,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대한 일 연구”
- 권철웅, 2003, “위정척사사상에 관한 연구”, 한국교원대 교육대학원
- 장영숙, 2006, “왕조의 유산 속에 근대의 교량을 넘어서지 못한 대원군”
- 김윤곤, 1999, “흥선대원군의 쇄국주의적 정책론”, 한국행정사학지, 7(`99.4),
pp.155-162
- 김홍일, 1987, “한국근대 민족주의 운동연구”,
- 육군본부, 1983 “(통일과 웅비를 향한)겨레의 역사”

<인터넷 사이트>
- 역사갤러리 (http://kr.dcinside7.imagesearch.yahoo.com/zb40/zboard.php?id=history)
제목: 정치개혁운동(政治改革運動)과 쇄국정책(鎖國政策)의 양면성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http://kr.dcinside7.imagesearch.yahoo.com/zb40/zboard.php?id=history&sn1
=&divpage=8&banner=&sn=off&ss=on&sc=off&select_arrange=headnum&d
esc=asc&no=63035)
- 독립기념관 (http://www.independence.or.kr/)
- 한국교회사 연구소 (http://www.history.re.kr/)
-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
- 서울역사박물관 (http://www.museum.seoul.kr/)

<단행본>
- 김태웅, 2003,「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조선후기편」, 솔
- 김태웅, 2003,「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근대편」, 솔
- 이영화, 2003,「조선시대 조선사람들」, 가람기획
- 남경태, 2001,「종횡무진 한국사」하권
- 이이화, 2003,「한국사 이야기-17권 ‘조선의 문을 두드리는 세계열강’」
- 국사편찬위원회, 1999, 「한국사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국사편찬위원회
- 김동인, 발행년불명,「운현궁의 봄」, 대산출판사

<영상자료>
- KBS 역사스페셜 (http://www.kbs.co.kr/1tv/sisa/hdhistory/)
2006년 8월 25일(금), 밤 10:00-11:00 (KBS 1TV) 방송,
“흥선대원군, 왜 그를 개혁가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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