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산리 절터 및 백제 창왕명 석조 사리감
- 최초 등록일
- 2007.06.14
- 최종 저작일
- 2006.11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두 유적관련 주요 사진과 내용 정리 보고서 입니다 `- `
목차
부여 능산리 절터
출토유물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
2.사리 및 사리감
1) 사리의 개념 및 공양방법
본문내용
●부여 능산리 절터
부여 능산리 사지 (扶餘 陵山里 寺址) - 사적 제434호
수량/면적 - 28,989㎡
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 15-1 외
부여 능산리 절터는 국립부여박물관에 의해 조사되었으면 백제시대 절터로 사비도성의 외곽을 둘러싼 나성(사적 제 58호)과 능산리 고분군(사적 제 14호) 사이에 형성된 협소한 계곡내에 위치하고 있다.
절터는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남북일직선상에 배치된 일탑 일금당 식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목잡은 금당과 함께 이중기단위에 세워졌으며, 목탑터에서는 사리감이 발견되었다. 이 사리감에는 모두 20자의 글씨가 각자되어 있는데, 건물터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되었다,
금당은 이중기단을 갖춘 팔작지붕으로 추정되며, 정면 5칸, 측면 3칸이다. 계단은 남북의 두 곳에만 설치하였다.
강당은 길이가 37m나 되는 거대한 집으로 내부는 2개의 큰 방으로 나누어지며, 서쪽방에는 온돌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그 형태가 만주 집안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동대자 유적과 비슷하다.
이 절터에는 공방 시설이 두 군데에서 발견되었는데, 제 3,4 건물터이다. 이곳은 금속류, 칠기제품, 유리제품 등을 만들던 곳이다. 특히 제 3건물터의 중앙방의 장방형 목과수조 안에서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되었다.
사리감의 명문 내용으로 보아 이 절은 백제 왕실에서 발원한 기원사찰 또는 능사로써 A.D 567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백제 명망과 함께 폐허화된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