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연산군을 위한 변명
- 최초 등록일
- 2007.02.06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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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는 지금까지 연산군을 패륜아 또는 폭군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prejudice는 어디에 바탕을 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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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리는 지금까지 연산군을 패륜아 또는 폭군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prejudice는 어디에 바탕을 둔 것일까? 우리는 단지 중종반정을 통해 주군을 몰아내고 새 황제를 옹립한 성리학으로 무장한 관료세력들의 시각에서 쓰인 문헌들을 보고 그를 폭군으로 매도해 버렸다. 저자는 성리학적인 기준에 따라 연산군을 평가하는 기존의 평면적인 접근을 거부하고 연산군을 힘의 논리에 따른 역사적ㆍ이념적 희생자로 보고 있다.
연산군이 폭군으로 지목된 이유는 왕권강화를 위한 정책마다 기득권세력과 사사건건 대립하게 됐고, 이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 그 이유이다. 연산군은 망국이 신강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덕보다는 힘을 중시한 패도주의자로 엄한 법치를 바탕으로 성종 때 후퇴한 왕권의 원상회복과 강화작업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성리학으로 무장한 관료세력은 덕치를 바탕으로 하는 왕도주의를 내세워 천하의 통치권을 제왕과 신하가 고르게 나누어 갖자는 군신공치를 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연산군의 이 같은 법가적 주장을 폭군의 논리로 매도해 버렸다. 이 내용만으로도 연산군과 군신들의 대립이 얼마나 심각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군신들은 연산군이 풍류를 즐기는 것조차 왕의 도리에 맞지 않는다고 했었다. 이것은 그들이 숭상하는 조선성리학의 절의와 명분 때문인데, 고려조의 불교정책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조선성리학은 송대의 멸망을 단순히 힘에 의한 굴복으로 해석했다. 이로 말미암아 송대 성리학이 지닌 병폐와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낼 위험을 지니고 있었다. 연산군의 몰락은 결국 후에 신권세력이 서로 붕당을 만들어 대립하는 식의 당파정치를 만들었다.결론적으로 저자는 연산군에 대한 연구를 승리한 관료세력이 쓴 문헌에만 의존해서 연구할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통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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