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독일의 역사, 독일의 문화, 독일의 생활상, 독일경제, 독일 경제정책, 독일 정당, 빈 조약과 독일 자유주의 운동(독일 역사, 독일 문화,생활상, 독일 경제정책, 독일 주요정당, 빈 조약과 독일 자유주의운동)
- 최초 등록일
- 2007.01.11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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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일의 역사, 문화와 독일경제 및 독일의 정당에 관한 고찰
목차
Ⅰ. 독일의 역사
Ⅱ. 독일의 문화와 생활상
1. 언어 및 인종, 종교
2. 국민성
3. 음식
4. 도시와 지방의 차이
5. 결혼관
6. 여성의 지위 및 사회 활동
7. 신세대 경향
8. 교육
9. 생활상
10. 대중 문화와 스포츠
11. 교통
1) 철도
2) 비행기
3) 지하철
4) 버스
5) 시가 전차(Stra nbahn)
6) 택시
7) 자동차
12. 축제
13. 공휴일
14. 언론 매체
1) 잡지
2) 신문
3) 방송국
15. 주의 사항
Ⅲ. 독일의 경제 정책
1. 독일의 경제적 전통과 역사과정
2. L. Erhard 및 Freiburg school의 학설과 패러다임
Ⅳ. 독일의 주요 정당
1. CDU(독일 기독교 민주 연맹)
2. CSU(기독교 사회 연맹)
3. SPD(독일 사회 민주당)
4. FDP die Liberalen(자유 민주당)
5. 독일의 종교개혁과 30년 전쟁
Ⅴ. 빈 조약과 독일 자유주의 운동
본문내용
지금의 독일 지역을 가리키는 게르마니아라는 이름은 단순한 지리적 명칭이 아니다. 이 말은 고대 로마인들이 독일어를 사용하던 북쪽의 작센과 프리젠, 서쪽의 프랑크, 중부 독일의 튀링겐, 남쪽의 알레마넨과 바이에른 종족들이 거주하던 라인 강, 엘베 강, 도나우 강(다뉴브 강) 사이의 지역을 지칭하던 말이었다. 지금의 국가명 Bundesrepublik Deutschland의 도이취(Deutsch)라는 말의 어원도 `로마적이지 않은`, `민중적인`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로마 제국의 동북부 경계가 게르만 민족의 잦은 침입으로 안정되지 못하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엘베 강까지 영토를 확장하였고, 9년에는 엘베 강이 게르만 민족과 로마 제국의 경계가 되게 하였다. 그러나 게르만 민족의 헤르만(Hermann) 장군이 베스트팔렌(Westfalen) 지방의 토이토부르거발트(Teutoburgerwald)에서 로마 군대를 대패시켜 로마 제국의 게르만 민족에 대한 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시켜 놓아, 로마 황제는 엘베-다뉴브 강의 경계가 아닌 라인-다뉴브 강을 경계로 제국의 영토를 다시 후퇴시켰다. 그 결과 게르마니아 지역은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나뉘어져서, 지역 전체가 로마의 지배하에 있어 로마 문명의 완전한 영향권에 있었던 프랑스와의 문화적인 차이를 낳게 한 원인이 되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부터 라인-다뉴브 강을 따라서 역사적인 도시들(마인츠, 코블렌츠, 아우크스부르크, 레겐스부르크)로 발전하게 되는 장성을 축조하였다. 장성 안의 성채들에서 로마 제국의 문화가 만개하였고, 성채를 중심으로 게르만 민족과 로마인들과의 문물 교류가 시작되었다.
기원 원년 후 발트 해 부근의 게르만 민족들은 인구 팽창으로 인해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흉노족의 유럽 침략은 동쪽으로부터 슬라브족의 이동과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가져왔다. 하지만 많은 수의 게르만 부족은 오데르나이세 강 양동쪽의 지역에 계속 남아 있었으며, 이는 후에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슬라브족과의 갈등 관계의 시초가 되었다.
이동을 시작한 게르만 부족들은 대부분 남쪽으로 이동하여 일부는 로마 황제의 허가를 받아 로마 제국의 영토 안으로 이주하였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로마 제국 안으로 들어온 게르만 부족은, 처음부터 로마 제국에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었지만 점차 게르만 민족의 이동으로 로마 제국의 국경이 무너짐으로써 유럽 대륙의 지배자는 로마인으로부터 게르만족으로 서서히 바뀌게 되었다. 왜냐하면 게르만 민족은 이미 로마 제국의 군사 제도, 행정 조직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흉노족의 서진이 멈추었을 무렵 게르만 민족은 로마 제국의 영토 안으로 깊숙이 침입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